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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여행을 떠나야 하리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그대 길 떠나야 하리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새벽의 문 열고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오, 아침이여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홀로 길 떠나는 ..

2018.12.13

나도 몰래 맘에 드네/ 고려의 어느 과부

나도 몰래 맘에 드네     고려의 어느 과부  말 위의 하얀 얼굴, 저 선비는 누구일까요마적 석 달 동안 이름 몰라 애태웠네  내 오늘사 알았다네, 그 이름 김태현을 가는 눈 긴 눈썹이 나도 몰래 맘에 드네馬上誰家白面生(마상수가백면생)邇來三月不知名(이래삼월부지명)如今始識金台鉉(여금시식김태현)細眼長眉暗入情(세안장미암입정)  우리나라 최초의 시문선집인 ‘동국문감(東國文鑑)’의 편찬자 쾌헌(快軒) 김태현(金台鉉:1261-1330). 그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일찌감치 학문을 이룬데다, 그 풍채가 단아하고 눈과 눈썹이 그림처럼 고왔던 미남자이기도 했다. 그가 일찍이 동료들과 함께 어느 선배 집에서 학업을 익히고 있을 때다. 선배는 빼어난 면모를 지닌 쾌헌을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여러 번 안채로 불러들여..

2018.12.11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류시화|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이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나였다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새에 대해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나는 두려웠다다시는 묻지 말자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저 세월들을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새는 날아가면서뒤돌아보는 법이 없다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이미 죽은 새다Contemplation ㅡ Doru Apreotesei

2018.12.08

섣달 그믐 / 강백년(조선)|

* 섣달 그믐 / 강백년(조선) 술 다 마시고 등불이 사그라지도록 잠을 못 이뤄새벽종이 울린 뒤에도 외롭고 쓸쓸한 마음 여전하네내년에는 오늘 밤 같은 섣달 그믐이 없어서가 아니고나도 사람인지라 가는 해가 아쉬워서라네 * 세모 / 엄원태한 해가 저문다파도 같은 날들이 철썩이며 지나갔다지금, 또 누가남은 하루마저 밀어내고 있다가고픈 곳 가지 못했고보고픈 사람 끝내 만나지 못했다생활이란 게 그렇다다만, 밥물처럼 끓어 넘치는 그리움 있다막 돋아난 초저녁별에 묻는다왜 평화가 상처와 고통을 거쳐서야이윽고 오는지를 ...지금은 세상 바람이 별에 가 닿는 시간초승달이 먼저 눈 떠, 그걸 가만히 지켜본다

2018.12.07

겨울나그네 / 관허스님|

겨울나그네 / 관허스님 낙엽 따라 여기오니 너무 춥다 지금쯤 저버린 꽃잎도 아플 것이다 그리움을 남긴 지난 가을 신열로 아플 것이다 한번쯤은 소리 없이 떠나야 하는 이 길을 걸어간다면 바람 부는 겨울날에 내리는 눈 마음에서 물고기로 요동친다 눈으로 조그마한 움막 짓고 바람으로 세상 말리며 살고 싶어 겨울의 나그네로 떠다닌다 눈보라치는 길을 가다보면 낙엽이 아직 흩어져 길 위에 쌓이고 가슴앓이 하는 내 시간의 계절로 돌아가는 마음 정처 없이 눈길을 걸어간다 너무나 여려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는 ..

2018.12.05

나 홀로 길을 가네 / 레르몬또프

나 홀로 길을 가네 / 레르몬또프나 홀로 길을 가네돌이 많은 길은 안개 속에서 반짝인다.밤은 고요하고 황야는 신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별은 다른 별에게 소곤거리고 있다.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장엄하고 놀랍다!대지(大地)는 맑고 푸른 및 안에서 잠들어 있다.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苦痛)스럽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나는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는가?후회(後悔)할 만한 일이 있던가?나는 이미 삶에서 어떤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그리고 과거(過去)의 일에서 어떤 후회(後悔)도 없다.나는 자유와 평화(平和)를 갈구하고 있다.모든  것  잊고  잠들  싶다 ㅡ . "요절한 러시아의 作家 레르몬또프(Lemontov  1814~1841)의 詩이다 이 詩는 어둠의 神秘에 쌓여 있는 莊嚴한 하늘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

2018.11.30

썰물은 반듯이 밀물이 되리니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잃은 것과 얻은 것 /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내 이제껏 잃은 것과 얻은것놓친 것과 획득한 것저울질해 보니자랑할 게 없구나.하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좋은 의도는 화살처럼과녁에 못 닿거나 빗나가 버린 걸내 알고 있으니.그러나 누가 감히이런 식으로 손익을 가늠하랴.패배는 승리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썰물이 나가면 분명 밀물이 오듯이.The Gartan Mother's Lullabye / Phil Coulter

2018.11.27

친구 / 홍수희

* 친구 / 홍수희오랜 침묵을 건너고도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라는 이름 앞엔 도무지 세월이 흐르지 않아 세월이 부끄러워 제 얼굴을 붉히고 숨어 버리지 나이를 먹고도 제 나이 먹은 줄을 모른다네 항상 조잘댈 준비가 되어 있지 체면도 위선도 필요가 없어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웃을 수 있지 애정이 있으되 묶어 놓을 이유가 없네 사랑하되 질투할 이유도 없네 다만 바라거니 어디에서건 너의 삶에 충실하기를 마음 허전할 때에 벗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신은 우리에게 고귀한 선물을 주셨네 우정의 나뭇가지에 깃든 날갯짓 아름다운 새를 주셨네 엘가 / 사랑의 인사 外

201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