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순례

국보 제88호 금관총 금제 허리띠(金冠塚金製銙帶)

창포49 2010. 6. 25. 19:34

 

 

                                                 국보  제88호 금관총 금제허리띠(金冠塚 金製銙帶)

 

 

 

 

                                                                           금관총과대및요패의부분

 

경북 경주시  인왕동 76 국립경주박물관

 

과대는 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여 만든 허리띠를 말하며, 요패는 허리띠에 늘어뜨린 장식품을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허리띠에 옥(玉)같은 장식품과 작은칼, 약상자, 숫돌, 부싯돌, 족집게 등 일상도구를 매달았는데, 이를 관복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나 신라에서는 관직이나 신분에 따라 재료, 색, 수를 달리하여 그 등급을 상징하였다.

경북 경주시 노서동 소재 금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제 과대 및 요패는 과대길이 109㎝, 요패길이 54.4㎝이다. 과대는 39개의 순금제 판으로 이루어져 있고, 양끝에 허리띠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인 교구를 달았으며, 과판에는 금실을 이용하여 원형장식을

달았다. 과대에 늘어뜨린 장식인 요패는 17줄로 길게 늘어뜨리고 끝에 여러 가지 장식물을 달았다. 장식물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지만, 크고 긴 것을 가장자리에 달았다.

금관총 과대 및 요패는 무늬를 뚫어서 조각한 수법이 매우 정교한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경주 남산

경주 남산 - 신라 불교의 향기

불교는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종교이자 정신세계였으며, 생활철학이었다. 신라인이라면 누구나 다 불교신자였으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도 종교적인 신앙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경주 도심 곳곳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절들이 생겨나 삼국유사에 의하면 밤하늘 별들만큼이나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사찰의 문턱은 의외로 높았다. 누구에게나 열려진 것이 아니었다. 종교는 점점 타락해졌고,

권력과 부귀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공간을 제공해 준 것이 바로

경주의 남산이었다.  남산은 신라인에게 있어서 서방정토 극락세계라 칭할 정도로 신성시된 영산으로서,

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불교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 사람들은 남산에 수많은 불탑과 사찰, 그리고 불상들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부분이 서민적인 것이어서, 남산만은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공간이었음을 확인케 한다.

현재 남아있는 절터만 106개, 그 밖에 78개의 불상과 61개의 석탑 등이 가는 곳마다 산재해 있다. 확인된

절터에 비해 불상과 석탑이 수가 적은 것은, 이 유적지가 야외에 노출되어 있는만큼 각종 약탈과 문화재

훼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디며, 그 당시 사람들의 종교적 염원과

예술적 열정을 느끼게 하는데엔 부족함이 없다.

               경주 남산 지구내에 있는 주요 유물은 아래와 같다.

                             ♣ 경주남산 미륵곡 석불좌상(보물 제136호) 
                       ♣ 경주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제186호) 
                       ♣ 경주남산용장사곡 석불좌상(보물 제187호) 
                       ♣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제913호)
                       ♣ 천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1188호) 
                       ♣ 남간사지 당간지주(보물 제909호) 


                             ♣
경주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 경주배리 석불입상(보물 제63호) 
                       ♣ 경주남산 불곡 석불좌상(보물 제198호) 
                       ♣ 경주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제199호) 
                       ♣ 남산 칠불암 마애석불(보물 제200호) 
                       ♣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 경주 삼릉계 석불좌상(보물 제666호)

 

 


 경주 남산 미륵곡에서 발견된 석불좌상은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전체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둥근 얼굴에서는 은은하게 내면적인 웃음이 번지고 있다.  손모양은 손가락 하나로 마귀들을 누른다는 뜻을 지닌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다소 연약해 보인다. 불상과는 별도로 마련해 놓은 광배(光背)는 매우 장식적인데, 광배 안에는 작은 부처와 보상화·덩쿨무늬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칠불암은 윤곽이 반원형인 큰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이 병풍처럼 앞에 펼쳐져 있고 그 앞에 높이가 그 보다 낮은 사각바위 4면에 4개의 석불을 조각해 놓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의장은 특이하여 바위의 자연적인 포치를 잘 이용하여 석불을 배치한 효과가 크다.

  본존불이 새겨진 병풍바위의 반원형 윤곽과 4개석불이 조각된 4각바위의 윤곽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듯한데 이러한 의장의 독창성을 산다면 칠불암을 국보급으로 보아도 무리는 없다.


본존불은 세련된 솜씨를 보이는 작품이다. 좌불의 높이는 약 2.7미터. 양감이 풍부한 얼굴, 유연한 어깨 및 팔의 곡선, 법의의 흐름도 몸체의 균형을 계산한 뒤의 안정을 추구한 것이어서 전체적인 인상이 부처의 자비로움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부처상은 완전정면에서는 볼 수가 없다. 앞에 사면불상의 사각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면불암석 뒤로 일부만 보이는 본존불은 그만큼 궁금증을 자아내는 효과를 보인다.

석불 중에는 마애석불이 특히 많은데 마애석불이란 바위에 새긴 석불을 뜻한다. 즉 이러한 석불은 밀반출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경주 남산의 마애석불중 상릉 계곡에 있는 마애석불들이 유명하다.
 왼쪽 사진은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둥굴고 풍만한 얼굴과 안정감 있는 구도가 부처의 위엄을 느끼게 한다.


 이 외에도 삼릉계곡에는 암벽 곳곳에 불상들이 부조되어 있어, 옛 정취를 느끼며 등산하기 좋다.


 

삼국유사에 보면 부처님과 문수보살이 이 곳 산과 바위에 머물면서 권세있는 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내려와

꾸짖고 가르침을 주고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백성들이 필요하면 언제든 내려와 보살펴 준다고 신라인들은 믿고 있었다.   바위에 부처를 조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부처를 바위에 조각한 것이 아니라 바위속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즉 신라인들은 언제 어디에라도 있는 그들의 구원의 대상을, 경주 남산에서 찾아낸 것이고,

석불을 조성하면서 그 믿음을 구체화 시켜 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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