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순례

국보 82호 감산사석조아미타불입상 (甘山寺石造阿彌陀佛立像)

창포49 2010. 6. 21. 19:20

 

 

국보   82호
명   칭   감산사석조아미타불입상
  (甘山寺石造阿彌陀佛立像)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월성군에 있는 감산사는 신라 성덕왕 18년(719)에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을 빌고, 국왕과 왕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후 그는 어머니를 위해 미륵보살을, 아버지를 위해 아미타불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두 불상을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국보 제81호),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국보 제82호)으로 지정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석조아미타불입상은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체 비례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불상의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의 세부표현도 세련되어 신라적인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체는 비교적 두꺼운 옷 속에 싸여 있어서 가슴의 두드러진 표현은 없지만, 당당하고 위엄이 넘쳐 부처님의 모습을 인간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온 몸에 걸쳐서 U자형의 옷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목에는 한번 뒤집힌 옷깃을 표현했는데 이는 신라

불상의 특징으로, 불상의 전체적인 형태와 함께 불상을 박진감있게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된다.

불신 뒤의
광배(光背)는 배(舟) 모양이며 가장자리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새겼다. 광배 안에는 3줄의 선을 도드라지게 새겨 머리광배와 몸광배로 구별하고 있으며, 몸광배 안에는 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臺座)는 맨 아래가 8각이고, 그 위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와 활짝 핀 연꽃무늬를 간략하고 큼직하게 새기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일 뿐 아니라, 광배 뒤의 기록에 의해 만든 시기와 만든 사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불상으로 우리나라 불교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미타불 (阿彌陀佛)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처.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처.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미타(彌陀)라고도 한다. 이 부처의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된 것이 정토교(淨土敎)이다. 아미타(阿彌陀)란 이름은 무량수(無量壽)·무량광(無量光)을 나타내는 산스크리트
아미타유스(amitāyus)와 아미타브하(amitābhas)의 한역(漢譯) 음사(音寫)이다. 아미타불의 기원은 처음에는 모두
석가모니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후대에 와서 석가모니를 다른 각도에서 영구히 표현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를
보살사상(菩薩思想)의 견지에서 설법함으로써 아미타불은 석가모니가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상(理想像)으로 직시되고
구원불로 존숭되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 등에 의하면
아미타불은 세자재왕불(世子在王佛)이 출현했을 때 법장(法藏)이라는 보살이었으나 무상의 깨달음을 얻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전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본원(本願)으로서 48대원(四十八大願)을 세우고 5겁(五劫) 동안 수행을 거듭한 결과
서원과 수행을 성취하여, 지금으로부터 10겁이라고 하는 오랜 옛날에 부처가 되어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10만억불토
(十萬億佛土) 떨어진 안락(安樂)이라고 하는 정토(淨土)에서 교설(敎說)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뭇 생명있는 자들은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통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위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데, 이 모두가 아미타불의 본원에 근거한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대승경전 속에 관설(關說)되어 있는 가르침은,
특히 중국·한국·일본 등지에서 염불을 통하여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여 깨달음을 얻는 불교의 일대 계통을 이루게
되었다. 한국의 아미타불에 관한 신앙은 6, 7세기 무렵 신라(新羅)의 원효(元曉)에 의하여 널리 보급되고 체계화되었다.
그는 정토교의 보급을 위하여 각처를 다니면서 미타염불을 권장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수많은 교학승(敎學僧)들도
미타신앙 전파에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의 현실은 사람들을 미타신앙에 귀의하게 했으며, 얼마 안 가 곳곳에 수많은
아미타불상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그 뒤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미타사상은 선(禪)과 융합되어 지눌(知訥)·
보우(普愚)·나옹(懶翁)·기화(己和)·휴정(休靜) 등의 고승을 통하여 맥이 이어져 내려와 침체된 불교계에 신앙의 불을
밝히기도 하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찟듯이

한번 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법정, 숫타니파타(Sutta-nipata) 강해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