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순례

국보 37호 경주구황리삼층석탑(慶州九黃里三層石塔)

창포49 2010. 5. 9. 19:41

 

 

국보   37호
명   칭   경주구황리삼층석탑
  (慶州九黃里三層石塔)

경북 경주시 구황동 103

 

 

      신라 신문왕이 돌아가신 후 그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세운 탑으로, ‘황복사지석탑’으로 불리기도 한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며,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제112호)이나

      고선사지삼층석탑(국보 제38호)에 비해 작아진 규모이다.

 
      기단의 양식은 두 탑과 거의 비슷하나, 기단의 각 면에 새겨진 가운데 기둥이 3개에서 2개로 줄어들어 있다.

      탑신부도 여러개의 돌로 짜맞추는 대신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어, 달라진 석탑의 양식을 보여준다.

      지붕돌은 윗면이 평평하고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가 경쾌하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露盤)만이 남아있다. 
      효소왕 1년(692)에 세워진 탑으로,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즉위한 지 5년만인 706년에 사리와 불상 등을

      다시 탑안에 넣어 앞의 두 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

 

      1943년 탑을 해체하여 수리하면서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 사리함과 금동 불상 2구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을 발견하였는데,

      그중 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발견된 유물의 성격이 기록되어 있어

      탑의 건립 연대와 조성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전기 석탑양식의 변화과정이 잘 담겨져 있어 소중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물명칭 구황동 삼층석탑 사리기
(慶州九黃洞三層石塔舍利器)
국적/시대 한국(韓國) / 통일신라(統一新羅)
재질 금속(金屬) / 금동제(金銅製) 

출토(소)지 구황사지 삼층석탑 보수공사중 발굴
소장기관 국립1(國立1) / 중앙(中央)




유물명칭 금제 여래립상(金製 如來立像)
국적/시대 한국(韓國) / 통일신라(統一新羅)
재질 금속(金屬) / 금제(金製)
크기 높이 : 14 cm
지정구분 국보(國寶) 80호 

구항사지 삼층석탑 보수공사중 발굴
 
소장기관 국립1(國立1) / 중앙(中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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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칭 금동(金銅)ㆍ은제고배(銀製高杯)
국적/시대 한국(韓國) / 통일신라(統一新羅)
재질 금속(金屬) / 금동제(金銅製), 금속(金屬) / 은제(銀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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