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한국)

처용무(處容舞)

창포49 2010. 5. 7. 21:11

 처용무(處容舞)

처용무(處容舞)는 궁중 나례로 춤추는 사람 다섯 명이 처용가면을 쓰고 오방(五方)을 상징한  오색의상(五色衣裳)을입은 5인의 무원이 추는 전형적인 의식무용이다. 신라 처용실화에서 기원한 것으로 신라 헌강왕(憲康王) 재위 때 발생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처용무는 본디 나례(儺禮)와 같은 벽사진경(辟邪進慶) 의례에서 연행되던 것이 뒤에 궁중과 관아의 연향(宴享)에서 추어졌으며, 남무(男舞)로서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춤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9월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처용설화와 처용무

『삼국유사』에는 울산을 무대로 한 처용설화가 실려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울산의 바닷가에서 노닐다가 경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신하가 “이것은 동해 용왕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베풀어주어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왕은 신하에게 용왕을 위해 절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곧 안개가 흩어졌습니다.

용왕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과 함께 임금의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개운포라 합니다. 이때 세운 절을 망해사라 합니다.

헌강왕은 용왕의 한 아들을 서울에 데리고 가서 나라의 일을 돕게 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처용입니다. 왕은 처용에게 미녀를 주어 결혼하게 하고, 급간이라는 벼슬도 내려주었습니다.

당시에 서울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병을 옮기는 역신이 처용의 처에게 달라붙어 병을 옮기려 했습니다. 처용이 밤늦게 집에 돌아와서 이를 보고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역신을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역신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말하기를, “제가 공의 아름다운 아내를 시기해서 병을 옮기려 했는데,

성내지 않고 용서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이제부터는 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후 신라 사람들은 처용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가정에 역신이 들어오지 않고 좋은 일이 생기게

해 달라고 기원했습니다. 이후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궁중에서도 처용탈을 쓰고 춤을 추어 나라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이를 처용무라 합니다.

처용무는 최근에 유네스코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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