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순례

국보 31호 경주첨성대(慶州瞻星臺)

창포49 2010. 5. 4. 18:29

 

 

국보   31호
명   칭   경주첨성대
  (慶州瞻星臺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선덕여왕 (善德女王 ?∼647)

신라 제27대 왕. 성은 김씨. 이름은 덕만. 신라 제27대 왕(632∼64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덕만(德曼). 진평왕의 장녀로,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왕으로 추대되었다. 즉위년인 632년에 대신 을제(乙祭)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하게 하고, 전국에 관원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진휼(賑血)하였으며, 633년에는 주군(州郡)의 조세를 1년간 면제해 주는 등 민심을 수습하였다.

634년 분황사(芬皇寺)를, 635년에는 영묘사(靈廟寺)를 세웠다. 대외적으로는 634년에 인평(仁平)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당(唐)나라에 대한 신라의 자주성을 견지하려고 하였다. 642년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본격적인 침공을 받자 김유신(金庾信)을 압량주(押梁州;지금의 慶山) 군주(軍主)에 임명하여 백제의 공격을 방어하는 한편 643년에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 무렵 당나라로부터 귀국한 자장(慈藏)의 건의에 따라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구층탑(皇龍寺九層塔)을 축조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선덕(善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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