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 박경리

창포49 2019. 3. 23. 15:27

              




칼 빌헬름 홀쇄 1863-1935 덴마크/"창 가에서의 기다림" 73x66.7cm


        * 산다는 것 / 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이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모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면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Rivages Infinis / Saint-Preux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넋 - 천상병  (0) 2019.03.25
                                                                                                                그리운 꽃편지 ... 김용택  (0) 2019.03.25
                                                                                                                꽃으로 잎으로 ...유안진  (0) 2019.03.21
                                                                                                                한시 - 강남의 여인(江南女)/ 최치원|  (0) 2019.03.18
                                                                                                                침묵하는 연습 ... 유안진  (0) 2019.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