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여행을 떠나야 하리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그대 길 떠나야 하리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새벽의 문 열고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오, 아침이여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홀로 길 떠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