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팜므파탈 - I. 무자비한 미녀 (La Belle Dame Sans Merci)

창포49 2011. 10. 12. 20:28

 

 

 

 

 

 

 

 

 

 

John William Waterhouse - The Beautiful Woman Without Mercy, 1893

Oil on canvas 112 x 81 cm

Hessisches Landesmuseum, Darmstadt

 

 

기사도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유랑하고 있는 이 기사는

수많은 괴마와 싸워 이기지만 이 여인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다.

맨발로 숲 속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여인은 누군가에게 쫓기던 상황인 듯하다.

기사는 천진하고 연약해 보이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위험으로부터 구해주지만

이 여인이 바로 자신에겐 위험일 줄이야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온 금욕 수행의 도가 그녀 앞에서 무너지려는 순간이다.

그래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무자비하기까지 하다.

남자의 목을 칭칭 감은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죽음에 이르는 유혹이다.

그녀는 달콤하지만 넘어서야 할 시험이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지금까지 힘들게 걸어왔던 길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이를 넘어야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 하나가 열릴 것이다.

 

 

 

 

 

 

Arthur Hugues - La belle dame sans merci 1901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오 무슨 번민이 있는가요 갑옷 입은 기사여

홀로 창백한 모습으로 헤매고 있으니?

사초는 호숫가에서 시들고

새들도 노래하지 않는데.

 

오 무슨 번민이 있는가요 갑옷 입은 기사여

그토록 여위고, 그토록 슬픔에 잠겼으니?

다람쥐의 창고는 가득차고 추수도 끝났는데.

 

나는 봅니다, 그대 이마 위에서

고뇌와 열병의 이슬로 젖은 백합꽃을.

그리고 그대의 뺨에 희미해지는 장미

역시 빨리 시드는 것도.



 

Frank Cadogan Cowper (1877– 1958), - The Damsel Of The Lake

 

 

 

나는 초원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소

아름다음으로 충만한 - 요정의 딸을.

그녀의 머리칼은 길고 그녀의 발은 가볍고

그녀의 눈은 야성적이었소.

 

나는 그녀의 머리에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소,

그리고 팔찌와 향기로운 허리띠도

 

 

 

 

 

Frank Dicksee (1853-1928) - La Belle Dame Sans Merci

 


그녀는 마치 사랑하듯 나를 바라보며

달콤한 신음소리를 내었소.

 

나는 그녀를 천천히 걷는 내 말에 태웠고

온종일 다른 것은 보질 못했소

비스듬히 그녀가 몸을 기울여

요정의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그녀는 나에게 달콤한 풀뿌리와

야생꿀과 감로를 찾아주며

틀림없이 묘한 언어로 말했소

 

"나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요"

 

 

 

 

 

 

Georges Antoine Rochegrosse - The Knight of the Flowers 1894

 

그녀는 나를 요정 동굴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눈물흘리며 비탄에 가득찬 한숨을 쉬었소.

거기서 나는 그녀의 야성적인 눈을 감겨줬소

네 번의 입맞춤으로.

 

거기서 그녀는 나를 어르듯 잠재웠고

거기서 나는 꿈을 꾸었소

아! 슬프게도

내가 꾼 마지막 꿈을 이 싸늘한 산허리에서

 

 

나는 보았소. 창백한 왕들과 왕자들을

창백한 용사들도 그들은 모두 죽음처럼 창백했소.

그들은 부르짖었소

 

‘무자비한 미녀가 그대를 노예로 삼았구나!’

 

 

 

 

 

 

 

Arthur Hacker - The Temptation of Sir Percival c1894

 

 

나는 보았소 어스름 속에서 섬뜩한 경고를 하는

그들의 굶주린 입술이 크게 벌어진 것을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어 내가 여기

이 싸늘한 산허리에 있음을 알았소.

 

이것이 내가 홀로 창백한 모습으로 헤매며

여기 머무는 이유라오.

비록 사초는 호숫가에서 시들고

새들도 더이상 노래하지 않지만.

John Keats - 잔인한 미녀(La Belle Dame Sans Merci)

 

 

 

 

 

 

Harry Clarke (1889-1931) - La Belle Dame Sans Merci

pencil, ink, watercolour and bodycolour on silk 38 x 28.5 cm

Private Colleciton

 

 

 

19세기 초 낭만주의 시인 '키츠'의 시 “무자비한 미녀(La Belle Dame Sans Merci)”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초 자연적인 존재가 남성을 유혹해 결국은 파멸시키고 마는 내용으로

머리카락으로 남성의 목을 졸라 죽이는 미인을 마술적이면서 신비스러운 고통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팜므 파탈 과 상징주의를 이미 예견한 작품이다.

 

 

 

 

 

 

Frank Cadogan Cowper - La Belle Dam Sans Merci, 1926

Oil on canvas 102 x 97 cm

Private collection

 

 

시와 같은 제목으로 그린 프랭크 코우퍼의 그림에서는 여인의 유혹에 넘어간 기사가 잠들어 있다.

취한 듯 잠든 남자는 깨지 못한 지 오래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거미줄이 그 증거다.

‘깨지 않는 잠‘의 꽃말을 지닌 양귀비꽃이 그의 주변에 가득하고,

그 빛깔은 여인의 붉고 강렬한 패턴의 드레스와 어우러져 시각적이 통일감을 이룬다.

색채 때문인지 그녀 자체가 양귀비꽃인 듯 느껴진다.

그녀는 나른한 유혹이고 영원한 잠이다.

그녀는 이제 그를 꽁꽁 얽어매던 긴 머리카락을 풀어 추스르고 있다.

 

 

 

 

 

Edward Burne Jones - The Beguiling of Merlin 1873-1874

Oil on canvas 111 x 186 cm

Lady Lever Art Gallery,Merseyside

 

 


번 존스의 ‘속아넘어간 멀린’을 보면 팔등신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다.

이 그림은 아서 왕의 전설에 나오는 마법사 멀린 이야기를 주제로 했다.

마법사 멀린은 아름다운 비비안(니무에)과 단둘이서 지내기 위해 그녀를 위한 별장을 지어준다.

비비안은 그곳에 지내면서 멀린을 안심시키고는 그에게서 마법을 하나씩 전수 받는다.

 

 

어느 날 그녀는 멀린에게서 배운 마법을 이용해

그를 꼼짝 못하게 몸을 마비시켜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다.

이제 비비안이 천하의 대마법사 멀린을 지배하는 자가 된 것이다.

 

그림 속에서 왼쪽의 멀린은 맥없이 축 늘어져 있고,

비비안은 마법서를 펼치고 서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녀의 머리카락이 뱀으로 둘둘 말려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메두사처럼 뱀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전설상에는 없다.

비비안이 멀린의 입장에서 사악한 여성임을 말해주기 위해 화가가 선택한 모티프가

바로 뱀 머리장식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뱀은 적으로 등장한다.

 

 

 

 

 

Herbert Draper - Lamia 190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무자비한 미녀와의 사랑으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는 '라미아 Lamia'에서도 발견된다.

라미아는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의 괴물로, 상반신은 여인이고 하반신은 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라미아가 혀를 낼름거리는 소리는 마치 달콤한 음악 소리와 같아서

수많은 여행자들이 매혹당한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은 모두 라미아의 먹이가 된다.

라미아는 전령신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새롭고 완전한 미녀'로 변한다.

 

 

 

John William Waterhouse - Lamia 1905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워터하우스의 그림에서 그녀는 부드러운 분홍색 옷에 사랑스러운 자태를 뽐내지만,

금색과 청록색의 뱀허물을 여전히 감고 있다.

 

라미아는 코린토스 시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과거 첫눈에 반했던 리시우스라는 청년을 기다렸다.

라미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혹된 리시우스는 그녀와 함께

라미아의 '자주색으로 둘러쳐진 달콤한 죄의 궁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리시우스는 라미아와 결혼식을 열어

자신의 신부 라미아를 자랑하고 싶어했다.

라미아는 자신을 현실 세계와 연결시키려는 리시우스의 시도가

결국 파국을 불러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은 화려한 저택과 라미아의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John William Waterhouse - Lamia 190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하지만 리시우스의 스승인 현자 아폴로니우스는 리미아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 라미아, 당신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리시우스가 뱀의 먹이가 되는 꼴을 두고 볼수가 없다."

 

아폴로니우스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고, 라미아는 도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리시우스 역시 죽고 말았다. 라미아는 사라졌지만,

리시우스는 그녀가 만들어 놓은 환상의 세계속에 이미 너무도 깊숙이 들어온 후 였다.

그는 더이상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모습을 감추던 그 순간, 그 역시 숨이 끊어질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초월적인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여인은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녀에게 집착하는 기사나 리시우스의 모습은 환상의 세계에서 도피처를 구하는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인간이 환상에 매혹 될수록 현실과는 점점 괴리되어 갈 뿐이며

그 환상이 사라질 때 인간은 현실 속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방황을 거듭하고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되고만다.

 

 


참고서적: 이주은 님의 " 빅토리아의 비밀"

 

 

 

 

 

 

 

 

 

 

 

 

2011 / 10 /11 inu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