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순례

국보 17호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浮石寺無量壽殿앞石燈)

창포49 2010. 4. 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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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7호
명   칭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
  (浮石寺無量壽殿앞石燈)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영주 부석사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조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가무량수전(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竿)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취현암(범종루(
                   안양문()·응향각()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이 있다.

                   의상은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며 그 중에서 10대덕()이라 불리는 오진()·지통()
                  ·표훈()·진정()·진장()·도융()·양원() 상원()·능인()·의적()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나 도신()및 신림() 등도
                   의상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의상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무염국사(
                   징효대사()·원융국사·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

 

                    부석사의 마지막 계단.. 안양루와 무량수전입니다..

 

 

일주문을 지나면서 천왕문에 이르는 은행나무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