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외국)

[스크랩] 11. 노르만의 영국정벌(Norman Conquest)과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36일 간의 프랑스여행

창포49 2016. 9. 2. 17:16

11. 노르만의 영국정벌(Norman Conquest)과 바이외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36일 간의 프랑스여행


바이외(Bayeux)...

사실, 이번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바이외라는 곳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프랑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검색하다가 캉과 몽생미셸 수도원 사이의

바이외라는 곳에 Norman Conquest의 전 과정을 수놓은 태피스트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70미터나 되는 태피스트리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노르만의 영국정복전쟁의 시말을

헝겊에 수를 놓아서 기록했다는 것은 선뜻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것도 11세기 Norman Conquest가 일어났던 그 당시에 제작한 것이...


(바이외 태피스트리(La Tapisseries de Bayeux)중의 헤이스팅스 전투장면.

매점에서 판매하는 복제품이다.)


그래서 이곳 저곳 검색하고 조사해본 결과 이 태피스트리는 꼭 보아야 되겠다고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바이외의 위치도 어차피 내 여행 경로인 캉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현장과의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외를 여행일정에 넣은 것이다.


캉에서 바이외로 가는 30km 남짓 되는 길은 구름이 적당히 섞인 맑고 푸른 하늘,

군데군데 노란 수를 놓은 듯한 유채밭과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의 밀밭이

사방 팔방 360도로 지평선까지 시야가 트여 있어 눈이 다 시원하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바이유 성당 뒷편에 주차를 하고 보니

인구 16,000정도의 자그마한 도시인데도 겉으로 보이는 성당은 이틀 전에 보았던  

루앙대성당에 비해서도 규모로는 손색이 없을 듯하다.


바이유에 온 목적은 태피스트리를 보기 위함이니 우선 태피스트리 박물관(Musée de la Tapisserie de Bayeux)을 찾았다.

입장료가 9유로, 이웃에 있는 MHAB박물관과의 겸용 입장권은 12유로이다.

프랑스의 박물관, 미술관, 문화재 입장료는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입장료가 비싸다고 해서 안 보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을 여행이 끝난 지금에야 실감한다.

몇 군데 시간 관계상, 그리고 뭐 볼 게 있으랴는 생각으로 건너 뛴 곳이 있는데 아쉬움이 남아 있다. 


1987년 9월 9일 영국 찰스왕세자와 다이애나빈이 왔다간 모양이다...


그리고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2유로 짜리 겸용 표를 사서 박물관에 들어갔다. 그런데 낭패다.

태피스트리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눈으로만 담아가기에는 내가 찾아온 길이 너무 멀었고 아깝다. 

그러나 하는 수 없지 않은가. 그냥 보고 눈에, 기억에 담아가는 수 밖에...

길이 70m, 폭 50cm, 무게 350Kg에 달한다는 이 태피스트리를 어떻게 전시하고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들어가 보니 긴 방에 U자 형태로 벽을 만들어 그림을 순서대로 따라가면서 보게 되어 있다.

전시실을 나와서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보며 열린 문틈으로 사진 한장을 급히 찍어본다.

너무 급히 서두른 탓에 제대로 찍히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이다...


그리고 기념품 판매장.

적당한 자료를 찾았지만 제법 비싸다.

그러다가 발견한 7유로 짜리 태피스트리 도판을 샀다.

자그만하지만 태피스트리 70미터 전체를 축소하여 접이식으로 만든 것이다.

집에 와서 스캔을 해보니 태피스트리가 보여주는 헤이스팅스 전쟁의 전모를 잘 볼 수 있다.

태피스트리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사진은 위의 도판을 스캔한 것들이다.)

1064년 참회왕으로 불리는 잉글랜드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은 자기의 후계로

외사촌인 노르망디공 윌리엄(프랑스어:기욤)을 지명하고

실세 권력자 가문인 고드윈 가문의 해럴드를 특사로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게 했다.


(그 배경들에 대해서는 전후 사정이 복잡하여 생략하기로 한다.)

해럴드가 프랑스로 항해하는 도중 표류하여 윌리엄의 부하 영주인

퐁띠외의 귀(Guy de Ponthieu)백작에게 사로잡힌다.



윌리암이 퐁띠에백작에게 해럴드를 놓아주라고 명하여 해럴드는 풀려나고

해럴드는 윌리엄의 요구로 브리타뉴 백작 코난 정벌에 참여한다.


브리타뉴 백작에게 승전한 이후  윌리엄은 해럴드에게 기사작위를 주고

해럴드는 윌리암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1066년 에드워드왕이 죽자 해럴드가 즉위한다. 

 점성가들이 혜성을 발견하고 해롤드에게 불길한 징조라고 한다.



영국에 있는 노르만 첩자가 에드워드왕 사후의 영국내의 진행사항을 윌리엄에게 보고하고

왕위가 해럴드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들은 윌리엄은 대로(大怒)하여 영국침공을 명령한다.


 노르만군은 영국에 상륙, 헤이스팅스에 이른다.

태피스트리에는 군수품의 운반, 윌리엄과 부하들의 연회, 요새의 공사,

첩자의 해럴드군 동태 보고 등이 활동사진처럼 나열된다.

그리고 전투 준비에 들어간다. 





윌리엄은 색슨군이 가까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색슨군의 경계병은 해럴드에게 노르만군이 접근했다고 보고한다.


윌리엄은 병사들에게 영웅적인 전투를 해달라고 독려하고

노르만 기병과 색슨 보병이 대치, 전투에 들어간다.


해럴드의 형제들인 거드(Gyrd)와 레윈(Lewine)이 전사한다.


윌리엄의 동생인 바이외 주교 오동(Odon)이 병사들을 독려한다.

윌리엄은 투구를 벗어 부하들에게 자신이 무사하다고 보여준다.


해럴드의 군사들이 윌리엄의 작전에 말려 서로 격리되고,


해럴드가 눈에 화살을 맞고 전사한다.


1066년 10월 14일 윌리엄은 색슨군에 승리하고 영국왕으로 즉위한다.

그가 바로 정복왕 윌리엄 1세이다.

현재 남아 있는 태피스트리는 여기서 끝이지만 원래의 작품은 몇 미터가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상이 길이 70미터가 되는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이 태피스트리의 제작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고 한다.

그 첫째가 태피스트리에도 나오는 인물인 바이외 주교이자 윌리엄의 동생이기도 한 오동(Odon)이고

또 하나의 설은 윌리엄의 왕후인 마틸드라는 설이다.

 내가 산 도판은 오동이라는 설을 따랐다.


그런데 잠시 후에 보게 되는 MHAB박물관에서 다른 설에 근거한 그림을 하나 보게 된다.

가운데의 인물이 윌리엄의 왕후인 마틸드인데 무릎에 작업 중인 태피스트리를 올려두고 있다.


1066년의 Norman Conquest에 대해서는 이만 줄이기로 하고...

애시당초 바이외 태피스트리 관람을 하면서 장면 하나하나를 꼼꼼히 사진으로 남기려고 생각하고

제법 긴 시간을 태피스트리 박물관에 배정을 했는데 사진촬영이 금지되다 보니

시간이 예상외로 많이 남았다.

그래서 이왕 돈을 낸 것, MAHB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보던 중 위의 그림을 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그림이 눈에 뜨인다.

한 때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푸에르토리코의 독립투사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글이

같은 소재의 그림과 함께 인터넷에 떠돌아 다닌 적이 있다.

실제로 푸에르토 리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루벤스가 그린 그 그림,

'키몬과 페로'는 고대 로마에서 일어났던 부(키몬)녀(페로)간의 이야기이지 푸에르토르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낚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옥에 갇혀 아사 직전의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딸의 숭고한 효심...


여기 바이외의 MAHB박물관의 그림은 '로마의 박애(Charité romaine)'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몽펠리에 출신의 화가 세바스티앙 부르동(Sébastien Bourdon)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이라고 붙어 있다.

박물관에서도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다른 사진들은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바이외 대성당을 잠깐 둘러본다.

정식명칭은 여기도 바이외 노트르담 대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Bayeux)이다.

옛날 바이외의 전성기 때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인구가 16,000명 내외라는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큰 성당이 지어 졌을까?

그것은 노르망디공 정복왕 윌리엄이 최초의 헌당식에 참석했다는 기록으로 가름하고자 한다.

당시 최고 권력자의 관심사였으니 그렇다고 해두고 깊이 들어가지는 않으련다.

역시 정면에서는 카메라의 한 앵글로 잡기가 어렵다.

성당의 내부도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여러 벽화로 장식되어 매우 아름답다.

특히 지하는  모든 기둥마다 채색의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바이외 풍경 조금...







 

오전에 둘러본 캉과 오후의 바이외는 나의 중세 노르망디 여행의 백미였다.

정복왕 윌리엄과 리차드 1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 같지만

그들이 남긴 세계사에서의 영향은 우리가 배우는 영어에,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에

아직 남아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장소로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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