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한국)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확정.

창포49 2012. 12. 10. 14:56

 

문화재청에서는 금년 1월 유네스코 신청대상으로 '아리랑'을 선정하여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하였다.
유네스코에서는 금년 11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 개최 4주 전 심사보조기구의 개별심사에서 인도의 '라다크의 불교 독송'과 함께 만장일치로 등재 권고하였으며,

12월 5일(현지시각) '아리랑'의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결정됨에 따라 우리나라는 모두 15종목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무형유산 등재 현황: 총 15건(2012.12월 6일 현재)>

- 2008년 이전(3):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01년), 판소리(03년), 강릉단오제(05년)

- 2009년(5): 강강술래, 남사당놀,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 2010년(3): 가곡, 대목장, 매사냥 (한국, UAE, 몽골 등 11개국 공동)

- 2011년(3): 줄타기, 택견,
한산 모시짜기

- 2012년(1): 아리랑

 

 

 

☆ 아리랑 장고반주 / 유옥선

 

 

'아리랑', 한국의 대표적 구전민요.

어느 시대에 생겨났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지금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해외에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아리랑'의 기원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여음인 '아리랑'의 어원에서 그 바탕을 찾고 있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이다.

이런 이유로 어원설은 대체로 '아리랑'의 최초의 형태가 1930년대에 정착된 '아리랑'과 유사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아리랑'이라는 말을 실사(實詞)로 보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① 아리랑(我離娘):'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② 아이농설(我耳聾說):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③ 아랑전설(阿娘傳說):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④ 알영설(閼英說):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밖에도 여러 발생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그저 口音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 유래했다고 봄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3대 전통민요 아리랑은 '정선아리랑' · '진도아리랑' · '밀양아리랑'을 말한다.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 동서를 따라 설정된 메나리토리권의 민요로 민요적 전통성과 지역성이 강하다.

'진도아리랑'은 호남지역의 육자배기토리권에 속하지만 다른 육자배기토리 민요와 약간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 진도와 호남지역, 충청남도 일대, 경상남도 서부지역, 제주도 등에 분포되어 있다.

'밀양아리랑'은 영남지역에서 전하지만 영남지역의 정자토리 민요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편 1926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 '신아리랑'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통속민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후 '아리랑'은 대중가요·영화·무용·문학 등의 전 예술분야에 파급되는 현상을 가져왔다.

대중가요로는 1931년 '낙랑아리랑'을 비롯하여 많은 곡이 만들어졌고 신민요에는 '경기아리랑'이 효시가 되어 많은 곡들이 불렸다. 3대 전통 아리랑을 제외한 여러 아리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춘천아리랑' : 한말에 춘천에서 의병투쟁을 벌일 때 부른 노래

'본조아리랑' : 대원군과 민비의 권력 싸움을 민중들이 성토한 노래

'광복군아리랑' : 만주 광복군의 독립의지를 담고 있는 노래

'치르치크 아리랑' : 조국을 빼앗기고 소련으로 떠난 알타아타시의 한인들이 부른 노래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아리랑 삼천리' · '영암아리랑' 등이 있다.

남북이 분단된 지금은 아리랑이 민족화합의 노래로서 널리 불리고 있다.

 

* 출처 : 브리태니커

 

 

* '아리랑'의 뜻.

 

아리랑이 정확히 무슨뜻인지는 아직도 정확한 해석이 없다.

몇가지 추측을 들면,

‘아리랑’의 ‘아리’의 첫째 뜻은 ‘고운’의 뜻이고, ‘랑’의 뜻은 ‘님’이라는 해석이 있다.

‘아리’가 고대 한국에서 ‘고운’ ‘곱다’ ‘아름다운’ ‘아름답다’의 뜻으로 쓰인 흔적은,

현대 한국어에서 ‘아리따운’(아리+다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걸 예로 들고 있다.

‘아리’의 둘째 뜻은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이라는 해석이 있다.

우리말에서 (마음이) ‘아리다’의 동사는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그러면 ‘아리’는 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이 되고,

‘아리랑’은 ‘(사무치게) 그리운 님’의 뜻이 된다.

그리고 ‘쓰리랑’은 ‘아리랑’의 둘째의 뜻과 동의어 또는 유사어로 보고 있다.

마음이 ‘쓰리다’는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로,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인 것이다.

‘아리랑’의 정확한 뜻을 몰라도 수백 년을 내려온 것은 현대어로는 치환할 수 없는 절묘한 뜻과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리랑의 뜻, 아름답고 멋진 님

 

우리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娥利郞) 노래는 우리 민족의 애환(哀歡)과 민족 정서(情緖)가 담긴 노래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10자),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10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10자),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10자).

戀人들이 부르는 戀歌, 아리랑!

아리(娥利)는 ‘아름답고 멋진’이란 뜻이다.

아리(娥利)의 쓰임새는 첫째 ‘아름답고 멋진’의 뜻으로 쓰인다.

한강의 원래 이름이 ‘아리수(水)’이다. 즉 아름답고 멋진 강물이다.

현대 한국어에서는 ‘아리따운(아리+다운)’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몽골에서 '아리'는 ‘성스럽다’ ‘깨끗하다’ 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둘째, 아리(娥利)는 상사병이 나도록 ‘사무치게 그리운’의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말에서 ‘마음이 아리다’ 뜻은 상사병에 걸렸을 때나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때의 표현이다.

랑(郞)‘낭군(郎君)’ 혹은 ‘’이란 뜻이다.

그래서, 아리랑(娥利郞)은 ‘아름답고 멋진’이란 뜻이다.

한편, 쓰리랑‘아리랑’의 둘째 뜻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마음이 쓰리다’라는 말은 ‘마음이 ‘아리다’와 같은 말이다.

즉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이다.

아라리요!’는 ‘알라!라는 뜻이다.

아리랑(娥利郞) 고개’는 ‘아름답고 멋진’이 넘어가는 고개이고,

’는 사랑에 빠져있는 나(我)를 뜻하며,

십리’는 결코 멀지 않은 십리(十里) 길을 뜻하며,

발병’은 발병(發病)나는 것을 뜻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충절(忠節)의 노래, 아리랑!

高麗 말엽에 朝鮮 창업을 반대한 고려 충신 72賢이 황해도 개성 만수산(송악산) 아래 두문동(杜門洞)에 숨어 지내다가

그 중 전오륜을 비롯한 7명이 강원도 정선(旌善)으로 은거지를 옮기고 高麗 왕조에 대한 忠節을 맹세하여 여생을 산나물을

뜯어 먹고 살았다.

1392년 그들은 고려 왕조에 대한 흠모와 두고 온 가족 및 고향에 대한 그리운 심정을 정선 아리랑을 통해 노래했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 장마 지려나!

만수산(송악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아리랑(娥利郞)高麗 말엽에 高麗가 망하고 朝鮮이 성립되던 왕조 교체기에 개성(開京)의 송악산(만수산) 두문동(杜門洞)

에서 1392년 만들어졌다.

두문동(杜門洞)은 高麗가 멸망하자 고려의 신하 72명이 朝鮮)태조 이성계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忠節과 志操를 지키며

모여 살던 곳이다.

杜門不出이란 말이 여기에서 유래 되었다.

高麗가 망하고 朝鮮이 새로 개국하였지만, 개성(開京) 송악산 두문동(杜門洞)에서 충절(忠節)지조(志操)를 지키며 사는 ‘아름답고 멋진 사람’을 표방했으며, 그것을 찬미하는 ‘아리랑(娥利郞)’ 노래가 생겨난 것이다.

杜門洞 72賢의 忠節과 志操의 외침이었다.

아리(娥利)’란 말은 ‘아름답고 멋지다’라는 뜻이며,

아라리(娥羅利)’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아름답고 비단처럼 멋지다’라는 뜻이다.

'아라리(娥羅利)가 났네'는 ‘아름답고 비단처럼 멋진 일이 생겼네’라는 뜻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결국, ‘아리랑(娥利郞)’은 忠節志操를 지키며 ‘아름답고 멋진 사람’으로 살고자 했던 杜門洞 72 들의 고귀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유행가가 아니라 기울어 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던 忠臣들의 삶과 죽음의 敍事詩였던 것이다.

開京 송악산 杜門洞에서 ‘아리랑 아라리요’ 라는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전국적으로 온갖 형태의 참요(讖謠)들이 이에 화답하며 창화(唱和)하였다.

그 이후, 아리랑(娥利郞)國難을 여러차례 극복하면서 한민족의 魂이고 民謠의 정수가 되었다.

또한, ‘아리랑(娥利郞)’은 외면당하고 압박당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자존적 표현忠節의 외침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었다.

朝鮮시대의 상류층들은 아리랑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아리랑의 개념에 대한 사상적 기반이 무너지고 영양 공급이 끊겼으며

하층민과 서민들에 의한 恨풀이 형식의 단순한 民謠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민간에서만 조심스럽게 불리던 ‘아리랑(娥利郞)’은 1926년 10월 01일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娥利郞)’을

공연하게 됨으로써 조선의 노래로 공인되었다.

日帝의 억압과 차별에 억눌렸던 한국 민족의 잠재적(潛在的)인 민족애(民族愛)를 표현함으로써 ‘아리랑(娥利郞)’ 노래는

우리 민족의 상징적 노래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나운규 감독이 만든 무성 영화 '아리랑'의 개봉은 전국에 일본 帝國主義에 대한 抗拒정신을 실은 '아리랑' 노래가 유행

하게 되는 촉발제가 되었다.

또한, 日帝시대에 의병 활동, 독립 운동3.1 운동 등을 계기로 아리랑(娥利郞)이 크게 부흥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日帝는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총부리 앞에서도 아리랑을 부르며, 나라와 민족에 대한 忠節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을 보고

아리랑을 금지시키고, 아리랑 노래를 수거하여 없앴다.

아리랑(娥利郞)高麗말엽杜門洞 72賢들이 기울어 가는 그들의 國運을 다시 회복하고자 忠節의 외침에 의해 출발

하였기 때문에 日帝시대에 나라를 잃고 온갖 억압과 설움 속에서 살아야 했던 식민지 민중들에게 민족적 獨立의지를 불태우는 촉발제가 되기도 하였다.

역사적 원상(原傷)을 풀어나가는 특유의 언어, 아리랑(娥利郞)

정선 아리랑(강원도), 진도 아리랑(전라도), 밀양 아리랑(경상도)을 묶어서 전통 아리랑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기 아리랑은 특정인의 창의적인 윤색을 거쳐 인위적으로 변이되었다는 뜻에서 신민요 아리랑으로 분류함으로써 전통 아리랑과 구별한다.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1926)’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경기 아리랑신민요 아리랑이 잇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동기 구실을 다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민요 아리랑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대중 가요화아리랑이며, 전통 아리랑에서 산업 사회의 대중 노래로서 살아남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이다.

결국, 아리랑(娥利郞)은 전통 민요 → 신민요 → 대중 가요 같은 길을 걸어갔다.

1930년대 이후 숱한 신민요 아리랑이 잇따라 창작되었을 때, 경기 아리랑은 본조 아리랑으로도 호칭되었거니와 그것은

경기 아리랑이 신민요 아리랑의 본류라는 뜻이다.

그 후, ‘종두 아리랑’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널리 보급시키기 창작되었고,

한글 아리랑’은 문명 퇴치 교육의 보급을 위하여 각기 창안된 것이며,

독립군 아리랑’은 독립군의 사기 고취를 위하여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창작된 것이다.

이들은 민요의 텃밭인 민간 밖으로 벗어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리랑(娥利郞)의 기원을 민족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역사적 원상(原傷) 의식의 표현이다.

아리랑을 푸념이나 넋두리라고 부를 수 있을 때 그것은 아리랑이 역사적 원상(原傷)을 풀어나가는 특유의 언어이다.

서러움. 애달픔. 원한을 말하게 되면, 아리랑이 지닌 역사적 원상(原傷)이 불러일으킬 감정 및 정조를 지적하는 것이 되고,

애원성이라고 하게 되면 역사성 원상(原傷)에 대해 아리랑이 지닌 소리로서의 애절함을 지적하게 되는 것이다.

아리랑(娥利郞)은 삶을 달래고 애간장을 삭이면서 풀어내는 소리이며, 원한과 아픔을 풀어내는 넋두리나 푸념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체념의 하소연인가 하면 강한 삶의 의지의 표현이었고, 익살 떨기의 넉살 부림이기도 하였다.

한민족(韓民族)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노래, 아리랑(娥利郞)

가수 조용필(趙容弼)은 ‘꿈의 아리랑’이라는 노래에서 아리랑 고개는 ‘희망의 고개’ 라고 노래했다.

아리랑 노래는 우리의 애국가(愛國歌)처럼 부르는 노래이다.

'아리랑(娥利郞)' 노래에는 한민족(韓民族)혼(魂)이 스며있다.

아리랑에 숨겨져 있는 충절(忠節)과 지조(志操)의 정신을 가슴에 새겨야 하며,

조상의 위대한 문화적 유산을 잘 계승해 나가야 한다.

2000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식에서 조수미가 부른 노래가 바로 아리랑 노래이다.

2002년부터 세계 구전(口傳) 무형 유산의 보존 및 전승을 지원하기 위해 유네스코(UNESCO)에 신설된 상(賞)의 이름이

바로 ‘아리랑 상(Arirang prize)’이니, 이미 아리랑은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991년 일본 지바(千葉)에서 개최된 ‘세계 탁구 대회’에서 ‘아리랑’이 남북 단일팀의 단가(團歌)가 되어 남북 화합과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 매김된 후,

2000년 시드니(Sydney) 올림픽을 비롯한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韓半島 旗와 아리랑 노래통일 한국의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은 남북한 양쪽과 세계 127개국에 흩어진 韓民族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노래는 ‘아리랑(娥利郞)’ 이상의 것이 없다.

아리랑(娥利郞)은 2012년 06월 유네스코(UNESCO)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했고,

무형 유산 위원회 산하 심사 보조 기구(Subsidiary body)로부터 2012년 11월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았으며,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제7차 무형 유산 위원회에서 2012년 12월 05일 최종 등재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 제례. 종묘 제례악. 판소리. 강릉 단오제. 강강술래. 처용무. 줄타기. 태껸 등 총 15개의 인류 무형 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문화재청은 아리랑에 대해서,

특정 아리랑이 아니라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모든 형태의 아리랑(娥利郞) 노래를 등재 신청했으며, 지역별로 독특한 아리랑이 존재한다는 점, 처한 환경이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어 부를 수 있다는 점,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광범위하게 전승된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아리랑(娥利郞)은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되며 공동체 정체성의 징표이자 사회적 단결을 제고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리랑의 등재로 무형 유산 전반의 가시성이 향상되고, 대화 증진, 문화 다양성 및 인간 창의성에 대한

존중 제고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리랑(娥利郞)은 다른 세계 무형 유산과 달리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만주. 몽골. 카자흐스탄의 해외 동포가 만든

아리랑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포괄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아리랑(娥利郞)과 관련된 민요 및 노래는,

아리랑 목동(박단마),

영암 아리랑(하춘화),

쓰리랑(유지나),

꿈의 아리랑(조용필),

강원도 아리랑(강원도),

경기 아리랑(경기도),

진도 아리랑(전라도),

밀양 아리랑(경상도),

정선 아리랑(강원도) 등이 있다.

 

* 출처 : http://blog.daum.net/dosu92/17453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