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lliam Wetmore Story - Medea
내가 죽도록 도와주었건만,
내 곁을 떠나겠다고?
나에게 그토록 못되게 굴고 나서,
감히 나를 떠나겠다고?
당신이 나쁜 거야,
평생 사랑한다는 약속을 깼지.
약속은 신성한 것.
신에 바친 약속도, 사랑의 약속도,
모든 약속은 그 무게가 같은데도,
신에 바친 맹세는 온힘을 다해 지키지.
어겼을 때의 천벌이 두려워서,
그런데 인간과 맺은 약속은 왜 그렇게 쉽게 깨는거야?
천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그건…….
인간이란 존재를 스스로 낮추는 짓이야.
나는 인간이니까
인간의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천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신과의 약속을 깼을 때와 같은 천벌이…….

Anselm Feuerbach - MEDEA 1873
하지만 인간인 내겐,
신처럼 천벌을 내릴 자격은 없어.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
이러다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이 아니라서,
상대에게 내린 천벌을 자기도 받아야 하는 걸 알았지…….
당신에게 내린 천벌은,
당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나도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 이라고.
사랑이 있기에 태어난 존재니,
사랑이 사라지면 없어져야 하는 거야.

Anselm Feuerbach - Medea
오..아이들아 왜 계속 그렇게 쳐다보니?
왜 날 보고 미소짓는거지?
이것이 너희의 마지막 미소니?
아아.,,...어찌할까..
저 애들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니 용기가 없어진다
난 못하겠어
계획을 포기해야겠어
아이들을 코린스에서 데리고 가야겠어
저 애들의 아버지를 괴롭게하려고
왜 내가 우리 애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왜 난 그 두배의 고통을 당해야만 하지?
안되겠어.
내 계획을 포기해야겠구나
오. 내가 왜 이럴까..
내 원수들이 날 조롱하게 놓아 두라고?
벌도 받지 않게 내버려두라고?
아니지, 해치워야되고 말고.
마음을 약하게 먹다니
이 얼마나 비겁한 짓인가
애들아. 집안으로 들어가거라
내 제물이 되는일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알아서 처신해
난 이일을 수행할꺼니까


Henri Klagmann - Médée 1868
오..내 심장이여
그런짓을 하면 못쓴다..
가련한 마음아..애들을 살려두거라
아이들이 아테네에서 나와 함께 살면 행복하게 해주련만
아니야..
저 지옥세계 복수의 악령들에 맹세코
내 아이들이 원수의 손에 학대받도록 놓아 둘수는 없어
어떤 경우에도 이미 결심은 굳었으니 피할 길은 없다
난 알고 있어
지금 난 가장 힘든길을 가고 있고
더 큰 슬픔의 길이 아직도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이젠 애들과 작별인사를 해야겠다
애들아, 손좀다오.
부디 저세상에선 복받기를 원한단다..
너희 입술이 달콤하구나
피부도 어찌 이토록 부드러울까
아이의 숨결은 어찌 이리도 사랑스러운가!
가거라.
어서 가거라.
너희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볼 수 없구나
무서운 공포가 나를 엄습한다
내가 하려는 끔찍한 결단을 나는 알고 있지
그러나 열정이 내 결단을 지배하니
열정이야말로 인간 삶의 가장 큰 공포의 근원이로구나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중

Evelyn De Morgan - Medea
그리스 신화와 비극을 통틀어 가장 잔인한 악녀로 손꼽히는 메데이아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다.
메데이아는 강한 의지와 열정을 지녔고
총명한 데다 마법을 부리는 진기한 능력까지 지녔다.
아름답고 청순한 여인 메데이아가
그리스 최고의 악녀로 돌변하게 된 데에는 기막한 사연이 숨어 있다.

Dulac, Edmund - Jason And Medea
남자라고는 모르던 순결한 그녀가
아버지의 소유물인 황금 양털을 훔치러 온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한다.
사랑의 화살이 꽂힌 순간부터 메데이아는 세상에서 오직 이아손만을 원하게 된다.
이아손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탐내는 보물인 황금 양털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랑의 열병에 빠진 메데이아를 이용한다.

William Waterhouse - Jason and Medea 1907
지구 끝까지 이아손을 따라갈 결심을 한 메데이아는 추적자를 피해 도망가던 중
애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동생 압쉬르토스의 사지를 토막내어 처참하게 죽이고,
충격으로 넋이 나간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르는 틈을 타 무사히 콜키스를 탈출한 것이다.
메데이아는 사랑에 눈이 멀어 형제를 잔인하게 살육하고 조국을 배신한다.

Gustave Moreau - Jason and Medea 1865
헌신적인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아손은
그녀와 함께 코린트로 건너가 두 아들을 낳으며 1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에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다.
테바이의 왕 크레온으로부터 사위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이아손이
순식간에 마음이 돌변하여 메데이아를 헌신짝처럼 버릴 결심을 한 것이다.
이아손은 젊고 아름다운 왕녀 글라우케와 재혼하기 위해 메데이아에게 이혼을 강요한다.
권력욕과 새로운 여인에 대한 욕정에 사로잡힌 이아손에게
조강지처는 행운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Anthony Frederick Augustus Sandys - Medea 1866-1868
위 그림에서는 글라우케를 살해할 목적으로
독을 부어 불을 지핀 다음 예복에 사용될 실을 잦는다.
탁자 위에는 그녀가 흉악한 마법사임을 알려주는 상징물이 보인다.
교접하는 두꺼비, 이집트 여신 샤크멧 상,
눈부신 황금 벽지를 이집트와 일본 판화에서 빌려온 도상으로 장식했다.
생각할수록 원한이 사무쳤는지 분을 참지 못해 애꿎은 목걸이를 거칠게 잡아뜯는다.
살기어린 눈동자에는 증오가 이글거리고 벌린 입술 사이로 저주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하늘처럼 믿었던 남편의 변심은 맹수의 발톱처럼
메데이아의 여린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질투와 분노로 눈이 뒤집힌 메데이아는 복수의 칼을 갈았다.
남편의 이혼 요구를 들어주는 시늉을 하며
신부의 예복에 마법을 뿌려 글라우케에게 선물했고,
글라우케가 눈부신게 아름다운 예복을 입는 순간
온 몸에 독이 스며들면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다가 처참하게 죽게 했다.

Eugene Delacroix - Medea about to Kill her Children
끔찍한 고통을 주는 것만이 철저하게 복수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남편이 가장 아끼는 자식들을 헤쳐 그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했다.
위 그림은 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왼손에 단검을 쥐고
오른 팔에 매달린 아이들을 금방이라도 찌를 것 같은 긴박감이 넘치는 순간을 그렸다.
풍만한 젖가슴을 드러낸 메데이아는 동굴 속에 숨어
남편이 들이닥치기 전에 아이들을 살해하기 위해 동태를 살핀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녀의 상반신과
동굴 속 어둠의 강한 대비가 극적인 긴장감을 한층 더해 준다.
그녀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이들의 눈에 두려움과 공포의 빛이 가득하지만
그녀는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 자식에 대한 연민과 동정마저 저버렸다.
어미이기보다 한 남자의 연인으로 남고 싶었던 여인의 한이
화면 전체에서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다.
메데이아는 질투심이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가를 보여준다.
그 폭발하는 여인의 감정의 분출과 파괴 본능, 폭력성은 남성을 한없이 두렵게 한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열정은 위험하다.
극단적인 정열이니만큼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 열정은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원한으로도 바뀔수도 있다
이명옥님의<팜므파탈> 中

2011 / 10 / 13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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