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스크랩] 자유와 무한의 색깔인 ‘파란색의 신비’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피안의 세계로 떠난 Amedeo Modigliani(Italian, 1884 - 1920)

창포49 2015. 7. 2. 21:16

 

 

 

 

Amedeo Modigliani

(Italian, 1884 - 1920)

 

 

 

 

 

 

모딜리아니의 영원한 연인 Jeanne Hebuterne

 

 

 

Portrait of a Woman in a Black Tie

 

 

 

Jeanne Hebuterne in a Large Hat

 

 

 

Portrait of Jeanne Hébuterne

 

 

 

Woman Seated in front of a Fireplace

 

 

 

Thora Klinckowstrom

 

 

 

The Son of the Concierge

 

 

 

Cypress Trees and Houses, Midday Landscape

 

 

 

Woman with Blue Eyes

 

 

 

 Young Woman with a Small Ruff

 

 

 

Pierre-Edouard Baranowski

 

 

 

Young Girl in Beret

 

 

 

Readhead Wearing a Pendant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Seated in an Armchair

 

 

 

Man with a Glass of Wine

 

 

 

Seated Boy with Cap

 

 

 

Seated Woman with Child

 

 

 

Landscape in the Midi

 

 

 

 Seated Young Woman

 

 

 

Self Portrait

 

 

 

Landscape

 

 

 

Landscape, Southern France

 

 

 

Young Girl Wearing a Rose

 

 

 

Young Girl Seated

 

 

 

Young Girl in a Black Apron

 

 

 

Portrait of Max Jacob

 

 

 

Servant Girl

 

 

 

 Young Girl in a Striped Blouse

 

 

 

Young Peasant

 

 

 

Portrait of Morgan Russell

 

 

 

Portrait of Doctor Devaraigne

 

 

 

Girl with Pigtails

 

 

 

Gypsy Woman with Baby

 

 

 

Jacques and Berthe Lipchitz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Leopold Zborowski

 

 

 

Jeanne Hebuterne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Girl on a Chair

 

 

 

Lunia Czechovska

 

 

 

 portrait de madame L

 

 

 

 Jeanne Hébuterne

 

 

 

Alice

 

 

 

Man with a Pipe

 

 

 

Little Girl in Blue

 

 

 

Lunia Czechowska, Left Hand on Her Cheek

 

 

 

Jeanne Hebuterne in a Hat

 

 

 

Head of a Woman in a Hat

 

 

 

Leopold Zborowski

 

 

 

Woman in a Red Necklace

 

 

 

Bride and Groom

 

 

 

The Little Peasant

 

 

 

Man witih Hat

 

 

 

Madame Georges van Muyden

 

 

 

Little Louise

 

 

 

Head of a Young Girl

 

 

 

The Black Dress

 

 

 

Jeanne Hebuterne in a Scarf

 

 

 

 The Boy

 

 

 

Leopold Zborowski

 

 

 

 Marguerite Seated

 

 

 

The Cellist

 

 

 

The Dairymaid

 

 

 

Jeanne Hebuterne

 

 

 

The Blue-Eyed Boy

 

 

 

Jeanne Hebuterne

 

 

 

 Female Head

 

 

 

 Caryatid

 

 

Nu Assis sur un Divan

 

 

 

Venus

 

 

 

Seated Nude with Shift

  

 

 

Reclining Nude from the Back

 

 

 

Recumbent Nude

 

 

 

Reclining Nude with Loose Hair

 

 

 

 Reclining Nude

 

 

 

Female Nude

 

 

 

Red Nude, 1917

 

 

 

Reclining Nude, 1917

 

 

 

Nude on a Blue Cushion, 1917

 

 

 

Nu Couché au coussin Bleu

 

 

 

Tree and Houses

 

 

 

Modigliani Birthplace Livorno

 

 

 

Modigliani, Picasso and André Salmon

 

 

 

Modigliani gravestone

 

 

Amedeo Modigliani(Italian, 1884 - 1920)


철저한 고독 속에서 36세로 요절한 화가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평생 가난과 술과 아편, 그리고 병(결핵)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다가 쓰러진 불우한 화가였다.
1884년 이탈리아 리보르노(Livorno)에서 출생한 모딜리아니는 1906년(콕토가 17세의 나이에 조숙한 시인으로 데뷔한 해) 파리로 나와 몽마르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1908년 처음으로 앵데팡당전에 회화 6점을 출품함으로써 정식으로 화가로서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러나 매일매일의 빵을 걱정해야 하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게 된다.

 

1909년 콘스탄틴 브랑쿠시를 만나 그의 격려에 힘입어 한 동안 조각을 시도하기도 하고, 세잔느의 대전람회를 보고 깊이 감명을 받아 <거지> <첼로 연주> 같은 작품을

그리기도 한다. 1913년부터는 몽파르나스에 거처를 정하고 키슬링·수틴·피카소 등과 친교를 맺는다.
이 무렵부터 모딜리아니 특유의 스타일을 개발하여 이색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1918년에는 라피트 거리의 베르트 베이유(Berthe Weill)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연 뒤, 방종한 생활과 음주·아편 등으로 악화된 결핵을 치료하기 위해 니스로 간다.
1919년 파리로 다시 돌아왔으나 중태여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던 중, 이듬해 1월 25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몽파르나스 시대의 친구인 시인 앙드레 살몽(André Salmon)은 《모딜리아니의 정열적 생애》에서, 모딜리아니를 가리켜 “한 사람의 외톨이”, 또는 “지극히 내성적인

사나이”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는 젊은 날의 모딜리아니가 잘 생긴 얼굴 덕분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음주와 기행의 숱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진 전설 속의 주인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가장 치열한 예술과의 투쟁을 벌인 고독한 내면적 존재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똑같은 유태인이며 몽마르트 시대 이래의 예술적 동지였던 막스 자콥 또한 말년의 모딜리아니에게서는 웃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렇지만 모딜리아니는 인간 자체를 혐오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인간에 대해 뜨겁고 깊은 애정을 한없이 기울인 드문 화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줄곧 초상화를 그렸고, 한 장의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하루에 1백 장도 넘게 데생을 했다고 한다.
모딜리아니의 재능이 데생과 조각과 유화의 세 부문에 걸쳐 빼어난 창조성을 보여주고 있음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화가로서의 천재성이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초상화 부문에서이다.
<서 있는 나부> <팔을 들어올리고 누워 있는 나부> <앉아 있는 나부> <긴 의자에 앉아 있는 나부> 등 일련의 나부 그림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1918년 남불 니스에서 요양할 때 여러 점의 풍경화를 그린 적이 있지만, 그의 회화 작업 과정에 있어서 특별히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물화는 거의 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과 혼과 손으로 재구성한 초상화

 

모딜리아니는 얼굴을 길쭉하게 늘여놓기도 하고,불균형을 강조하기도 하고, 눈을 도려내기도 하고, 목을 길게 늘여놓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이 그의 눈과 혼과 손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이다.
쉼없이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면서 그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간지하고 사랑하고, 또 비난하기도 한다.
그의 데생은 말없는 대화인 것이다."(장 콕토)

 

1906년 파리에 왔을 때,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에서 만난 예술 동지였던 시인과 화가들, 키슬링·막스 자콥·수틴·앙드레 살몽·호안 그리즈·피카소·

블라맹크·블레즈 상드라르 …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러한 초상화들 가운데 <장 콕토의 초상>(1917)이 있다. 이 초상화 속에서의 시인은 프록코트를 입고, 나비 넥타이를 매고, 가슴에 하얀 행커치프를 슬쩍 꼽고 있는

약간 뽐내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확실히 콕토라는 시인에게는 이러한 멋부리기의 아니꼬운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초상화에서 인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시인의 나비 넥타이와 행커치프가 아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시인의 손이다.
왠지 연약하게 느껴지지만, 모든 신경과 감각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은 ‘길다란 손’의 모습. 이른바 보들레르가 데생에 대해 정의하면서 ‘위대한 의지’ 와

‘섬세성’(<1845년의 살롱>)이라고 말했을 때, 그리고 막스 자콥이 데생을 가리켜 하나의 ‘형태의 의지’ 라고 말했을 때의 바로 그 ‘의지’와 ‘섬세성’이, 모딜리아니가

묘사하고 있는 콕토의 섬세하고 신경질적인 손에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콕토는 모딜리아니에 관하여 <몽파르나스의 모딜리아니>라는 제목으로 짤막한 에세이를 썼다.
거기에서 콕토는 조셉 바라 거리에 있는 키슬링의 아틀리에에서 작업에 몰두하던 모딜리아니가 “유채로 나의 초상을 그려 주었던 시기에 우리들은 더욱 깊은 관계를

맺게 됐다.”(<몽파르나스의 모딜리아니>)고 회상하고 있다. 시인은 화가를 위해서 3시간이 넘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화가는 시인의 특징적 인상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그려 나갔던 것이다. 콕토는 모딜리아니의 데생에 대해 이렇게 칭찬했다.

 

“모딜리아니의 데생은 최고의 엘레강스이다. 그는 우리들 모두의 귀족이다. 마치 유령의 선(線)처럼 보이는 핏기 없는 그의 선은 결코 서투름에 빠진 적이 없다.
그의 선은 샴 고양이의 부드러움으로 서투름에서 벗어난다.

 

모딜리아니는 얼굴을 길쭉하게 늘여 놓기도 하고, 불균형을 강조하기도 하고, 눈을 도려 내기도 하고, 목을 길게 늘여 놓기도 한다.
이런 모든 것이 그의 눈과 혼과 손에 의해 재구성되는 것이다. 라 로통드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쉼 없이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면서(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많은

초상이 있는 것이기에) 그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감지하고, 사랑하고, 또 비난하기도 한다.
그의 데생은 말없는 대화인 것이다.”

 

모딜리아니는 병과 빈곤과 알콜중독으로 신음하면서도 몽파르나스에서 군림했던 정신적 귀족, 마지막 보헤미안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활의 에피소드들은 로맨틱한 전설을 만들어 내고, 애수에 젖게 하는 소설 같은 감동적 이야기를 낳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런 허황한 전설을 꾸며 낸 호사스런 자들을 혐오하고 경멸했을 것이다. 콕토의 말에 의하면, 그는 고객을 찾아다니며 즉석에서 비슷비슷한

초상화를 그려서 파는 그런 화가가 아니고 “객석에 앉아서 손금을 보는 존엄한 집시”로서 주문에 의한 초상화 따위는 한 장도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눈과 혼과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데생은 ‘말없는 대화’를 나누게 한다.

 

파란 색의 신비를 찾아 헤맸던 방랑기사들

 

모딜리아니는 죽음을 눈앞에 보면서 자유와 무한의 색깔인 '파란 색의 신비'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피안의 세계로 떠났다.
모딜리아니와 콕토는 다같이 끝없는 무한의 세계, 파란 색의 신비를 찾아 헤매다가 사라진 몽파르나스의 현대적 방랑기사들이라 할 수 있다.

 

모딜리아니의 색깔 중에서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이 바로 이 ‘파란 색의 신비’이다.
<파란 눈의 소녀> <파란 옷의 소녀> <파란 에이프런의 소녀> <파란 상의의 소년> 등, 모딜리아니의 작품에는 왠지 청색을 주제로 한 것이 많다.
특히 <파란 상의의 소년>(1918)에 보이는 연약한 섬세성은 일종의 우아함이 깃들어 있는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또한 그가 죽기 전에 그린 <자화상>(1919)의 눈과 입가에 떠도는 상냥함과도 상통한다.

 

모딜리아니는 1919년 4월 남프랑스 칸느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전 지금 행복합니다.”라고 썼다.
그는 또한 친구인 음악가 마리오 바르보리를 그린 데생에서 넘쳐 흐르는 신생(新生)의 희열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죽음을 예감한 인간의 환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아무튼 모딜리아니는 죽음을 눈앞에 보면서 자유와 무한의 색깔인 ‘파란색의 신비’와 ‘말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피안의 세계로 떠났다.
모딜리아니와 콕토는 다같이 끝없는 무한의 세계, 파란 색의 신비를 찾아 헤매다가 사라진 몽파르나스의 현대적 방랑기사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가 림 (시인·인하대 교수)

 

-월간미술 발취-

 

 

 
You Needed Me  - Anne Murray

 

 

 

 

 

 

 

 

http://www.the-athenaeum.org/art/list.php?m=a&s=tu&aid=98 

 

http://www.artsunlight.com/artist-NM/N-M0005-Amedeo-Modigliani/N-M0005-Amedeo-Modigliani-ap1.html

 

출처 : 아트힐
글쓴이 : calra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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