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소설김삿갓]74. 서울 목멱산

창포49 2010. 11. 24. 11:45
 

 

 

   

 

  

 

74. 서울 목멱산

 

 

 남한산성을 떠난 김삿갓은 왕십리을 거처 머릿속으로만 상상해 보던 서울 장안으로 들어섰다.

예상했던 대로 서울거리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리거리 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이 분주한 시장판에는

오만가지 물건들을 늘어놓고 제각기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이것저것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날은 저물어 하룻밤의

잠자리를 구해야 했지만 절간이나 서당이 어디 있는지는 알 길이 없고, 부득이 여염집

신세를 저야 할까본데 집이라는 집은 모두 대낮부터 대문을 겹겹이 닫아걸고 있지 않는가.


문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관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낮에도  대문을 걸어놓고

산다는 것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밥 한 그릇도 주지 않겠다는 심보일 것이니 서울의

인심이 이렇게도 고약하더란 말인가. 김삿갓은 서울이라는 고장에 당장

정나미가 뚝 덜어졌다.그러나 어쩌겠는가.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하겠기에  이집 저집 대문을 두드려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거리의 그 많던

사람들도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고,

人定을 알리는 종소리가 스물여덟 번이나 들려 왔지만

김삿갓이 서울장안에 통행금지시간이 있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통행금지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대감이니 영감이니 하는 큰 도둑들이

좀도둑을 막는답시고 人定(통금시작)이니 罷漏(통금해제)니 하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백성들만 하늘이 준 땅조차 맘대로 밟지 못하도록 괴롭히는 것이 아니던가.

인정이 지나도록 거리를 배회하다가
순라군에 잡혀 광교 다리 밑의 거지 움막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지만 그래도 움막 속의 인정은 훈훈했다. 나름대로 손님대접을 하는

그들의 인간성만은 대문을 겹겹이 닫아걸고 사는 양반님 네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따뜻했다.
서울의 雲從街(종로)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구경을 하자면 구경거리가 너무도 많았지만 인정머리 없는 거리라고 생각하니

서울을 속히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왕 왔으니 서울장안의 풍경을 한번은 굽어보아야

 할 것이어서 남산에 올랐다.과연 남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안의 풍경은 글자 그대로 장관이었다.

인심과는 달리 萬戶長安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서울이요,

그를 둘러싸고 있는 山水는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북쪽에는 三角山, 北嶽山, 仁王山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천혜의 방벽을 이루었고,

장안을 성큼 뛰어넘은 남쪽에는 木覓山(남산)이 얌전하게 솟아 있으며,

그 밑으로는 한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어서 그야말로 山紫水明한 金城天府인 것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시인 묵객들이 서울의 산수를 예찬하고 국운만세를 빌었나보다.

김삿갓은 문득 옛 시인 吳洵의 시를 떠올렸다.

공중에 높이 솟은 세 송이 푸른 부용
아득한 구름 속에 겹겹이 서렸구나.
누대에 올라갔던 옛일을 생각하며
해거름에 절간의 종소리를 듣노라


 聳空三朶碧芙蓉
縹渺烟霞幾萬重
却憶當年倚樓處
日沒簫寺數聲鐘


또한 西山大師는 일찍이 남산에 올라 장안을 굽어보며

국운만세를 다음과 같이 빌었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러
이 큰 서울은 천 읍을 거느렸네.
하늘은 낳고 땅은 키우니
크나큰 성인은 모든 것을 기르시네.
하늘은 높고 땅은 두터우니
이 땅 조선은 만수를 누리오리


天其玄兮地其黃兮
維此大都統千邑兮
天其生兮地其遂兮
維此大聖囿萬類兮    
天其高兮地其厚兮
維此朝鮮齊萬壽兮

    
이토록 아름다운 장안에

사는 양반님 네들의 인심은 왜 그 모양일까.

 아무래도 서운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김삿갓은

문득 뒤가 마려워 바위 사이에 쪼그리고 앉았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 군상들을 내려다보면서 뒤를 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었다.

그래서 그는 짤막한 즉흥시 한 수로서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했던 서울을 이별했다.

남산에 똥을 누니 방귀가 먼저 나와
향기로운 그 냄새 온 장안에 진동한다.


放糞南山第一聲
香震長安億萬家

 

 

                                                                                    계속...

 

 

 

비 묻은 바람... 해금연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