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 금강을 건너며[도금강(渡錦江)]/ 윤종억 작/ 이종문 해설|

창포49 2019. 7. 14. 08:58

              


금강을 건너며[도금강(渡錦江)] 윤종억

금강, 저 강물은 몹시도 시퍼런데

비 맞는 나그네 되어 나루터에 서 있다오

젊은 날 온 세상을 건지려 했던 꿈이

작은 배로 강 건네주는 사공만도 못하구려

錦江江水碧於油(금강강수벽어유)

雨裡行人立渡頭(우리행인입도두)

初年濟世安民策(초년제세안민책)

不及梢工一葉舟(불급초공일엽주) .

그리하여 마침내 봄이 오면, 아버지의 쟁기질이 시작된다. 음지와 양지가 난데없이 뒤바뀌는 텅 빈 논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통쾌하여 속이 다 시원타. 하지만 저렇게 뒤집어서 이 넓은 세상을 언제 다 뒤집어엎는단 말인가. 그리하여 아들은 고향을 떠난다. 온 세상을 한꺼번에 왕창 뒤엎을 참으로 거대한 꿈을 꾸면서. 그러나 그렇게 떠난 아들들은 세상은커녕 한 마지기 논도 뒤엎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후회하기 일쑤다.

다산(茶山)의 제자 취록당(醉綠堂) 윤종억(尹鍾億:1788-1837), 그는 지금 금강 나루터에 우두커니 서 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 건너편에 있는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배 대신에 추적추적 빗님이 오신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속수무책으로 비를 맞고 서 있는 자신의 신세가 참 서글프다. 그래도 젊은 날엔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들을 편안케 하겠다는 큰 꿈을 품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은 강물 하나도 제 힘으로 건너지 못해 뱃사공의 신세를 져야 할 판이니, 뱃사공이 차라리 나보다 낫다. 그 푸르고 푸르던 내 꿈은 도대체 어디 갔나, 아아!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 전체를 죄다 바꾸겠다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들어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좀체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꿈을 약간 줄여/ 내가 살고 있는 나라라도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것도 역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이라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아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한 자리에 누워서야/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바꾸었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들이 바뀌었을 것을/ 거기에서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다 보면/ 세상 전체가 죄다 바뀌게 되었을지”

영국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다는 어느 주교의 묘비명이다. 세상을 건지려고 하기 이전에 나 자신부터 건져야 하는 건데, 후회는 늘 이렇게 너무 늦게 온다.

                                                      글: 이종문(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김정섭|  (0) 2019.07.22
往十理 - 김소월  (0) 2019.07.16
꽃지는 저녁 / 정호승  (0) 2019.07.12
버드나무 길 / 박용래  (0) 2019.07.08
삶은 섬이다 / 칼릴 지브란  (0) 2019.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