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애인에게 [제증청주인(題贈淸州人)] 윤현

창포49 2019. 4. 28. 11:37

                                                                             

              


청주의 애인에게 [제증청주인(題贈淸州人)] 윤현

 

만남과 헤어짐은 본디 들쑥날쑥한 것      人間離合固無齊(인간이합고난제)

눈물을 참으면서 손 놓은 것 후회로다     忍淚當時愴解携(인루당시창해휴)

꿈 속 넋 걸어갈 때 발자취가 남는다면    若使夢魂行有迹(약사몽혼행유적)

청주성 북쪽이 모두 길이 되고 말았겠지  西原城北摠蹊(서원성북총성혜)

 

국간(菊磵) 윤현(尹鉉: 1514-1578)이 충청도 관찰사로 재직할 때, 淸州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헤어졌다. 훗날 그녀를 그리워하며 위의 시를 지어 그녀에게 주었다. 이수광의 ‘지봉류설(芝峯類說)’에 수록된 이야기인데, 윤현의 문집인 ‘국간집(菊磵集)’에도 이 시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제 3구와 제 4구. 그녀가 몹시도 그리웠던 국간은 밤마다 꿈속에서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던 모양이다. 꿈속 발걸음에 자취가 남는다면, 그녀가 살고 있는 청주성 북쪽이 온통 길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어마무시한 표현 앞에서 나 같은 목석도 가슴이 뭉클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가만. 이 대목에서 의아해하는 분이 많으실 게다. ‘夢魂’이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옥봉(李玉峰)의 다음과 같은 시가 대번에 떠오를 터이기 때문이다.“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나요?/ 사창에 달 밝을 때 더욱 그리워/ 꿈 속 넋 걸어갈 때 자취 남으면/ 그대 문 앞 돌길이 모래 됐으리(近來安否問何如? 月白紗窓妾恨多若使夢魂行有跡/ 門前石路已沙)” 이 작품은 조선시대부터 인구에 회자되어 시조로 탈바꿈해 불려졌고, 그 시조가 다시 칠언절구로 번역되었다. 서도소리 가운데 하나인 「愁心歌」의 가사로 채택되기도 했고, 오늘날 한문교과서의 단골 메뉴인 이옥봉의 대표작 중에서도 대표작이다.


보다시피 두 작품 사이에는 글자상의 차이가 매우 많다. 그러나 시상의 흐름이 아주 비슷하다. 특히 작품의 눈에 해당되는 3구가 완전히 같을 뿐만 아니라 4구도 역시 상상력의 방향이 동일하다. 따라서 이 두 편의 한시를 두 사람이 각각 창작한 독립적인 작품이라 보기는 어렵다. 만약 그렇다면 어느 것이 선행 작품일까? 결론부터 먼저 말한다면 윤현의 작품이 먼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이옥봉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40편의 한시 가운데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17편이 이옥봉의 작품이 아니거나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이제 이옥봉의 한시에 대한 연구는 17편을 일단 제외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당황스런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글: 이종문(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메일신문 '이종문의 한시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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