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은 즐거워[田園樂(전원락)]/ 王維(왕유

창포49 2019. 4. 26. 18:30

              


전원은 즐거워[田園樂(전원락)] 王維(왕유)


복사꽃 붉은데다 밤비를 머금었고
桃紅復含宿雨(도홍부함숙우)

버들잎 푸른데다 아침 안개 몽롱하네
柳綠更帶朝烟(류록갱대조연)

꽃이 지나마나 아이 놈은 쓸지 않고
花落家僮未掃(화락가동미소)

꾀꼬리 우나마나 은자는 잠자는 중
鶯啼山客猶眠(앵제산객유면)

''''''''''''''''''''''''''''''''''''''''

봄날도 환한 봄날, 갓 피어난 복사꽃을 보노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가슴이 뛴다. 살짝 다가가서 내 입술을 슬며시 맞춰보고 싶다. 물론 그렇게 했다가는, "하, 할아버지, 저, 정말 왜, 왜 이러세요. 저는 지금,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 하는, 숨 넘어 가는 비명소리가 연달아 튀어나오겠지만... 그런데 바로 그 고혹적인 복사꽃이 밤비를 머금고 더욱더 촉촉하고 짙은 선홍빛 교태를 뽐내고 있다.

봄날도 환한 봄날, 봄바람에 너울대는 수양버들은 긴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동화사로 가는 76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스물네 살 처녀와도 같은 모습이다. 때문에 바람에 낭창대는 수양버들 처녀를 바라보고 있으면, 공연히 마음이 이상해진다.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그녀를 슬며시 안아보고 싶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수양버들 처녀가 아침 안개의 신비하기 짝이 없는 베일에 싸여 더욱더 아련하고 몽롱하다.

모두 다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실로 아름다운 봄 풍경이다. 그런데 바로 그 금상첨화를 배경으로 하여, 꽃이 떨어져도 쓸지도 않는 천하태평의 게으름뱅이 아이 놈이 하나 등장한다. 하지만 그 아이의 게으름을 너무 지나치게 탓하지는 말라. 그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피어있는 꽃만 꽃이 아니라 떨어진 꽃도 꽃이라는, 떨어진 꽃이라고 하여 차마 함부로 싹싹 쓸어다 버릴 수는 없다는, 꽃에 대한 절절하고도 아픈 사랑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 요컨대 그 아이의 마음은 다음과 같은 시조를 지은 정민교(鄭敏僑)의 그것과 같았을 게다. "간밤에 불던 바람 만정도화(滿庭桃花) 다지거다/ 아희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고야/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하더니, 이윽고 그 아이 놈에 퍽도 잘 어울리는 은자가 등장한다. 그는 우는 꾀꼬리를 울도록 버려두고 이 아름다운 봄 풍경 속에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곤다. 저 은자의 엄청난 자유와 절대적인 평화가 정말 부럽다. 2박 3일 쯤 월차를 내고 작품 속의 전원으로 슬며시 들어가서, 은자 옆에 큰 대 자로 드러누워 드르렁 드르렁 장단을 맞춰 코를 골고 싶다. 이 세상 힘들고 지친 친구들아, 같이 갈 사람 아무도 없나? 있으면 마카 다 요오 요오 붙어라.

                                                        글: 이종문(시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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