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백자 항아리...허윤정

창포49 2019. 2. 23. 07:06











 

백자 항아리...허윤정

 

 

너는 조선의 눈빛
거문고 소리로만
눈을 뜬다

어찌 보면 얼굴이 곱고
어찌 보면 무릎이 곱고

오백년
마음을 비워도
다 못 비운 달 항아리



[감상과 생각]


너는 조선의 눈빛
거문고 소리로만
눈을 뜬다

 

'너는 조선의 눈빛' 

아! 첫 구절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백자항아리를 이보다 더 그윽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한 말이 있었을까!

'너는 조선의 눈빛'이라니! 너무도 수려한 표현이다.

이 한 구절에 숨이 멎을 듯 멈춰 서서 그 다음 구절로 나아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 한 구절을 읽는 내 영혼을 꽁꽁 동여맨 듯이 표현한 이 한마디에

온몸이 전율을 느낀다.

'너는 조선의 눈빛'....... 조선시대의 혼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백자 항아리,

우리 선조들이 혼을 불어 넣어 고결하고 순결한 모습으로 빛나는 정신(精神)의

문화적 유산, '백자 항아리'를 이보다 더 훌륭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거문고 소리로만

눈을 뜬다


'거문고 소리에'라고 표현하지 않고, 왜 '거문고 소리로만'이라고 했을까?

'거문고 소리' 또한, 선조들의 혼이 연주된 음악이다.

백자 항아리에 깃든 선조들의 정신세계를 함부로 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희고 둥근 곡선의 아름다움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우리의 빈약한 시각으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조선의 혼'이 담겨 있다.

조선의 정신을 바로 이해하려는 마음과 정신으로 대할 때만이,

이 아름다운 백자 항아리를 바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거문고'라는 詩語를 택하여 백자 항아리 곁에 둔 것은 너무도 탁월한 시상(詩想)이다.

거문고 소리에만 백자 항아리는 눈을 뜨고 깨어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얼굴이 곱고

어찌 보면 무릎이 곱고


달처럼 둥글고 고운 얼굴처럼 곱고 곱다

백자 항아리의 무릎도 곱다.

'어찌 보면, 어찌 보면.......'

백자 항아리는 둥글고 둥글어서 얼굴도 무릎도 둥글고 둥글게 빚어진 하나의 몸통이다.

하나로 된 원형(圓形)이다. 모나지 않은 곡선의 아름다움이다.

곱고 둥글게 빚어진 백자 항아리를 조심스레 바라보는,

詩人의 시상(詩想)과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구절이다.


오백년 마음을 비워도

다 못 비운 달 항아리


'오백년 마음'은 조선왕조의 오백년을 담은 마음이다.

백자항아리에 담겨 있는 오백년의 마음은, 세월이 지나 비워지는 듯해도

다 못 비운 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백자 항아리에 실제로는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은, '빈 항아리'이지만,

그 속에는 '오백년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그 속에 담긴 조선의 마음을 비우려 한들, 어찌 다 비워질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희고 둥근 달을 닮은 달 항아리, 백자 항아리에 담긴

조선의 오백년 마음은 비울 수 없는 우리의 정신문화이다.

또한, 백자 항아리를 두고, 조선의 오백년 마음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해도

끝이 없어, 비워지지 않는 길고 긴 역사이며,

비워질 수 없는 고결한 정신과 마음이 담긴, 달 항아리이다.


짧고 간결하며 단아한 詩,

기품 있고 우아한 詩,

그윽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쓴, 곱고 아름다운 詩,

고결한 마음이 흠뻑 배어 있는 詩,

아... 어떤 찬사로도 이 詩를 다 말할 수 있을까!

[허윤정, 백자 항아리]... 그야말로 名詩이다.


- 2018년 7월 25일, 모닝듀 Morningdew -



허윤정 시인 (1939~ )

경남 산청에서 출생함.

시집에, [별의 나라], [꽃의 어록],

[겹매화 피어 있는 집]등이 있다.


- 나르샤 한성漢城성), Morningdew 모닝듀 -


 

쉼을 위한 국악명상 <그대 그리운 저녁>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봉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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