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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주.....분황사지와 황룡사지

창포49 2018. 11. 15. 07:18




[경주] 분황사지와 황룡사지

< 2018. 10. 16 >






분황사는 634년(선덕여왕 3) 정월에 창건되었다. 원효가 이곳에 머물면서 화엄경소(華嚴經疎)를 썼으며, 삼국유사에 의하면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도>가 있었다고 한다.










분황사모전석탑(국보 제30호)










높이 9.3m의 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으로 분황사의 창건과 동시에 건립되었다고 생각되나  원형은 알 수 없고 현재는 3층 뿐이다.










1층 탑신 4면에는 각각 감실을 만들고 문짝을 달았는데, 감실 안에는 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 좌우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하여 끼운 인왕상이 있는데, 매우 동적이며










근육의 표현에도 양감이 강조되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단층의 기단은 자연석으로 높게 쌓았으며, 그 위에 화강암으로 받침을 마련하고 탑신을 쌓았다.










기단의 네 귀퉁이에는 석사자상이 배치되어 있다.










옥개부는 전탑 특유의 구조인 상하에 층단이 있다.










1915년 수리 때 2층과 3층 사이의 석함 속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은제사리합, 구슬류 등이 수습되었다.



























































































































































































































당간지주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월성(月城)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지으려고 할 때 황룡이 나타나자 그곳에다 절을 짓기 시작하여 574년에는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만들어 안치하였다.










584년(진평왕)에는 금당을 건립했고 645년(선덕여왕)에는 목탑을 세웠다,










금당터





















중금당터










금동장륙삼존상을 안치했던 석조 대좌










서금당터










목탑터










'삼국유사' 권3 '황룡사구층탑조'와 '찰주본기 刹柱本記'에 의하면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법사의 발원으로 643년에 백제 장인인 아비지(阿非知)가
이간(伊干) · 용춘(龍春)과 함께 200여 명을 거느리고 2년 동안 작업하여 645년(선덕여왕 14)에 완성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탑의 높이는 탑신부 약 65m,
상륜부 15m로 전체 80m에 이르며, 이 탑의 기둥 속에는 자장이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 등을 봉안했다고 한다.











황룡사9층목탑 심초석










황룡사지에서 본 분황사지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금마타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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