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조 - 흐린 물 옅다 하고 /정희량(鄭希良)

창포49 2018. 9. 12. 13:56
      시조의 향기




              - 흐린 물 옅다 하고
              - 정희량(鄭希良) 흐린 물 옅다 하고 남의 먼저 들지 말며 지는 해 높다 하고 번외(藩外)에 길 예지 마소. 어즈버 날 다짐 말고 네나 조심하여라 * 흐린 물이 깊지 않은 줄로만 알고 덮어놓고 풍덩 뛰어든다. 뉘엿한 해에 제 젊음만 믿고 길 아닌 길로 든다. 막상 뛰어들어 물이 멱에 차면 그제서야 허둥지둥 당황한다. 해 다 저문 녘에 낭떠러지에서 길 잃고 헤매인다. 방심하지 말아라. 자만하지 말아라. 여임심연(如臨深淵) 여리박빙(如履薄氷), 깊은 못가에 선 듯, 살얼음을 밟고 가듯 삼가고 삼갈 일이다. 흐린 물은 깊어도 얕은 듯 하고, 번외의 길은 꼭 지름길일 것만 같다. 현혹되지 마라. 내 걱정 말고 네 앞가림이나 잘 해라. 나 자신을 살피라는 교훈의 글이라 하겠다. * 정희량(鄭希良1469-?): 연산군 시절의 문신이었지만 사화에 휩쓸려 행방불명이 된 인물이다. <연산군일기>와 <연려실기술>, <허암유고(虛庵遺稿)> 등에 보면, 자는 순부(淳夫)이고, 호는 허암(虛庵)이며, 본관은 해주다. 23살(성종23)에 사마시에 장원하고 성종25년 겨울에 왕이 죽어 재를 올리자 극언으로 상소했다가 다음해에 해주로 유배되었다. 여름에 풀려나서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검열 등을 거쳐 28살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듬해 병으로 사직하였다가 예문관 대교(待敎)가 되어 왕((燕山君)에게 경연(經筵)에 충실할 것과 간언을 받아들일 것을 상소하여 왕의 미움을 받았다. 이 해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었으므로 의주(義州)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 김해(金海)로 옮겼다. 이듬해에 풀려나 모친상으로 고양(高陽)에서 시묘(侍墓)살이를 하다가 시절에 절망하고 분해 하다가[傷時憂憤] 신발을 강가에 남긴 채 사라졌는데,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총명하고 자부심이 강했으며 성질이 과격했다. 복서(卜書)를 좋아하여 ‘갑자년의 화는 무오년보다 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시조는 험한 세상을 조심하며 살아가라는 당부에 대하여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거부하는 것을 대화체로 표현한 작품이라 한다 ♧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오겟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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