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소묘 - 김춘수

창포49 2018. 9. 7. 19:13

              

                                           




꽃의 소묘 - 김춘수

  

1.

꽃이여, 네가 입김으로

대낮에 불을 밝히면

환히 금빛으로 열리는 가장자리

빛깔이며 향기며

花紛이며...... 나비며 나비며

축제의 날은 그러나

먼 추억으로서만 온다

 

나의 추억 위에는 꽃이여

네가 머금은 이슬의 한 방울이

떨어진다

  

2.

사랑의 불 속에서도

나는 외롭고 슬펐다

 

사랑도 없이

스스로를 불태우고도

죽지 않는 알몸으로 미소하는

꽃이여

눈부신 순금의 의 눈이여

나는 싸늘하게 굳어서

돌이 되는데

  

3.

네 미소의 가장자리를

어떤 사랑스런 꿈도

침범할 수는 없다 

 

금술 은술을 늘이운

머리에 칠보화관을 쓰고

그 아가씨도

新婦가 되어 울며 떠났다

 

꽃이여, 너는

아가씨들의

쪼아먹는다

  

4.

너의 미소는 마침내

갈 수 없는 하늘에

별이 되어 박힌다

 

멀고 먼 곳에서

너는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나의 추억 위에는 꽃이여

네가 머금은 이슬의 한 방울이

떨어진다

 

너를 향하여 나는

외로움과 슬픔을

던진다




 

(High Plains Lullaby - Deb MacNe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