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산책
- 옛 님 생각
- 민사평(閔思平),情人
情人相見意如存 須到黃龍佛寺門
정인상견의여존 수도황룡불사문
氷雪容顔雖未覩 聲音?佛尙能聞
빙설용안수미관 성음방불상능문
고운 님
보고픈 생각이 나면
황룡사 문 앞으로
달아 오소서.
빙설 같은 얼굴이야
비록 못 봐도
방불(?佛-흐릿하거나 어렴풋함)한 그 목소린
여태 들려요.
민간에서 불려지던 노래를
민사평(閔思平)이 한시로 옮긴 것이다.
고려 말 경주의 황룡사(皇龍寺)는
폐허가 되었을텐데,
그 절집의 문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었을까?
읽기만 해도
마음이 먹먹해 온다.
살다 보면 문득
가버린 님이 생각날 때가 있겠지.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말도 못하게
그리운 날이 있겠지.
그대!
살다가 그런 날 만나게 되거든
아무 말 말고
황룡사 문 앞으로 찾아오소서.
빙설처럼 고운
그 모습이야 보이지 않겠지만,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앞에 서면
그 님의 그 목소리가 지금도
소곤소곤 들려옵니다.
따뜻한 봄 햇살에 종다리들
하늘 꼭대기까지 조잘대며 올라가고,
우리 사랑했던
아름답던 시간들
주춧돌 위에
여태도 남아 반짝입니다.
무지개로 걸리던
빛나던 맹세는 어디로 갔을까?
사랑했던 그 사람은
어디에 숨었나?
잊었던 그 사랑의 이야기가
생각나는 날이면,
맺지 못한 꿈이
안타까운 날이면,
나는 기둥만 남은
황룡사 일주문 앞에 와서
눈감고 그 기둥(幢竿支柱-당간지주)에
기대곤 합니다.
저녁 하늘을 울리는
범종(梵鍾) 소리
더엉,
덩 ..
*
민사평(閔思平1295~1359):
자 탄부(坦夫). 호 급암(及庵)
본관 여흥(驪興) 시호 문온(文溫).
산원(散員), 별장(別將) 등
무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충숙왕 때 문과에 급제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지내고
여흥군(驪興君)에 봉해졌다.
충정왕(忠定王,1337~1352)을 따라
원나라에 갔던 공으로
충정왕이 즉위하자
공신의 칭호를 받고
첨의참리(僉議參理), 찬성사,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 역임.
시서(詩書)를 좋아하고 학문에 뛰어나
이제현(李齊賢) 등과 함께
문명을 날렸다.
보물 제708호인 <급암선생시집>은
그의 시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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