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오보에 협주곡 D장조

창포49 2014. 1. 18. 11:02

 

 

 

 

 

 

Concerto for oboe & small orchestra in D Major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오보에 협주곡 D장조

 Richard Strauss (1864. 6. 11 ~ 1949. 9. 8

 

 

 

  



전악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협주곡들은 그의 일생을 통해 나올 작품들을 위한 기본 틀로 불려질 만한 것 들이었다. 열여덟에서 스무 살이 되던 1882년과 1885년 사이 그 유명한 작곡가는 세 개의 협주곡을 썼다. <바이올린 협주곡 8번>, <호른 협주곡 11번> 그리고 사실상 단독 악장 피아노 협주곡인 <부를레스크>그 뒤로 그의 두 번째 호른 협주곡이 1942년에 작곡되기 전까지 최소 57년 이상의 공백기가 있었다. 이어서 1946년에 오보에와 소 규모 관현악단을 위한 협주곡이 쓰여졌고, 생을 마감하기 2년전인 1947년 그의 마지막 기악작품인 <클라리넷과 바순을 우한 협주곡>이 완성되었다.슈트라우스는 후기의 협주곡들을 전부 통틀어 "우발적인 작품들"로 여겼다.


조국에 고통을 가져다 준 대참사에 대한 그의 슬픔을 잘 나타내고 있는 엄숙한 느낌의 <메타모르포젠>과는 다르게 그의 두 번째 호른 협주곡은 여러 후기 작품들 중에서도 안정된 고전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온음조 안에서 독주악기의 아르페지오로 구성된 케덴차의 시작부분은 한치의 실수조차 없는 슈트라우스 개인의 성향을 드러내준다.  


1942년, 세계 제 2차대전이 한창 떠오를 무렵, 슈트라우스는 그의 마지막 오페라 Capriccio의 작곡을 끝 낸 뒤 작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들을 쓰 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그 당시에 그는 그의 유명한 두번째 호른 협주곡도 작곡하였다. 이 곡과 다른 다섯 곡들을 위한 곡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옛 대 작곡자 들을 기리기 위해서 썼다고 하는데, 이는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와바그 너인데, 그 이유는 진정한 독일의문화가 파괴되어가고 있었다고 슈트라 우스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토인 Garmisch에 거주하고 있었던 슈트라우스는 어느날 미국군 인 John de Lancie의 방문을 맞이하게 되었다.

 

 

 

 

 

 

 

 

John de Lancie는 군인이었지 만 미국에 있을당시 피츠버스 교향악단의 수석 오보주자였다.

그들은 둘의 공통 언어인 불어로 몇시간동안이나 이야기 했다고 한다. De Lancie는 후에 이렇게 전했다고 한다.

부끄러움과 대작곡가의 존재에 대한 경외심으로 나는 내 자신이 당시 하고 있던 대화에 어떠한 흥미거리를 제공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해 했었던게 기억난 다. 하지만 한번은 내 모든 용기를 내어서 그의 곡들에 널리 쓰인 아름다운 오보에 멜로디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그에게 오보에를 위한 곡을 한 곡 써줄 수 있을까 부탁을 했었다. 당시의 대답은 '아니오'였지만, 그 일로 계기로 몇달내에 그는 협주곡의 스케치를 시작했다. 이 협주곡의 오보에 파트는 1945년 9월에 완성되었다. 그 이듬 달에 스트라 우스는 나찌와 협조했다는 심문을 피하기 위해 그의 아내 Oauline을 떠나 스위스 에서 머물렀다.

 

그때 Baden에서 그는 오케스트라 파트를 10월 25일에 완성 하였으며, 1946년의 1월과 2월에 그 때Metamorphosen과 이 곡이 Zurich에서 각 각 초연되었으며 3월에는 그의 두번째 Wind Sonatina가

Winterthur에서 초연되었다. 이 곡의 독주가는 Tonhalle Orchestra의 수석 오보에주자 Marcel

Saillet이었으며 Volkmar Andreae에 의해 지휘되었다. 슈트라우스는 de Lancie를 초대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당시에 미국을 떠날 수가 없었다.


 

 

Richard Georg Strauss (1864 ~1949)

 

 


제1악장


제2악장


제3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