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ia Okeeffe
American Painter 1887. 11. 15. ~ 1986 .3. 6.
Poppy 1927
“예쁜 꽃을 보면 꺾어오고, 마음에 드는 조개껍질이나 돌멩이, 나무 조각이 있으며 주워온다. 만일 사막에서 아름다운 상아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것 역시 집으로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이 얼마나 드넓고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지, 또 그것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얘기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사용할 수 있다. 세상의 광활함과 경이로움을 가장 잘 깨닫게 해주는 것은 바로 자연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녀의 꽃들에 대해 여성의 성적 상징성에 비유하며 ‘꽃의 암술은 여성의 밀실의 변형일 뿐이며 작가의 성적 욕구 불만의 무의식적 표현’ 이라는 혹평과 많은 가십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서 이와 같은 직설적이며 자전적인 성적 요소를 끝까지 부인하며 자기의 길을 지켜 온 20세기 미국 미술계에서 독보적인 여류화가다.
White Iris No.7 1957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게 왜 이상한가.”
“사람들은 왜 풍경화에서 사람을 실제보다 작게 그리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나에게는 꽃을 실제보다 크게 그리는 것에 대해서는 왜 질문을 하는가?”
성녀와 창녀의 이미지 사이, 남자들의 편견과 예술권력에 맞서 매혹적이고도 냉철한 정체성을 확립한 위대한 여성화가 조지아 오키프이다.
Ram's Head with Hollyhock and Little Hills Oil on canvas 1935 Milwaukee Art Museum
절대 고독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서는 친구도 고향도 버렸고, 눈이 멀어 가는 천형 앞에서도 의연하게 그림을 붙들었으며, 그림을 그리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영혼의 한 편린도, 신경 한 조각도, 돈 한 푼도 낭비하지 않으면서 인생과 예술을 통합하는 데 최선을 다한 불굴의 여인. 그녀의 삶과 작품에 대한 명성과 신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An Orchid 1941
그녀는 여성으로서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남성화되기를 거부하고 여성으로서의 감성, 예술혼을 더욱 독립적으로 발전시켰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대접을 받기 위해 남성과 같이 행동할 것이 아니라 남성과 같은 책임감을 갖춰야 할 것이다.”
The Lawrence Tree 1930
어디로든 뻗어나갈 듯 꿈틀대며 살아있는 오키프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가득히 담긴 청청한 나무 한 그루. 별이 가득한 하늘 끝에 닿을 듯 우뚝 치솟았다. 그녀의 예술혼의 열정을 보는 것만 같다.
이 그림이 나를 잡고 놓지 않은 인연이다.
The Dark Iris No.II 1926
Yellow Hickory Leaves With Daisy
Grey Line with Black Blue and Yellow 1923
색이 너무 아름답다. 독립적인 느낌의 활짝 핀 색이 굉장히 압도적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이를 확실하게 표현해내며,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름다운 것들에 당당하게 사랑을 준 그녀. 자신과 자신의 예술을 고집 있게 사랑한 오키프이다.
Yellow Calla 1926
꽃잎과 꽃술 등 꽃의 이미지를 여성 특유의 미와 추상, 섹스와 연관된 상징으로 결부시키는 그녀의 그림은 남성적 시선의 미의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예쁘다’는 한 마디로 여성의 미를 평가 절하해 남성의 아래 두려는 기성의 시선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From the Distance 1937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작품의 주제는 주로 두개골, 짐승의 뼈, 꽃, 식물의 기관, 조개껍데기, 산 등의 자연을 확대시킨 것이 특징으로 윤곽선이 율동적이고, 자연에 대한 탐미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그림에서 보듯이 실질적 형상에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불어 넣어 신비롭고 때로는 상징적이기도 한 그녀의 그림이다. 때로는 육욕적으로...부드럽고 단순하고 고도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띄기도 한다.
보면 볼수록,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신비스러워지는 이 그림, 아름다운 환상으로 이끈다.
Abstraction White Rose 1927
오키프는 단순화를 통해 사물이 지닌 핵심적인 아름다움을 증폭시켰다. “사물의 지극한 단순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난 화가이다.
From The Lake
“아무도 꽃을 볼 때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작은 꽃에 눈길을 둘 만큼 사람들은 여유롭지 않고 또 자세히 보기가 어려우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본 꽃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랗게... 그러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내가 그린 꽃을 보는데 귀한 시간을 내어 주리라 생각한다.”
Inside of Iris 1926
Red and Bones Oil on canvas 72.2 x 101.6 cm 1941 philadelphia Museum of Art Alfred Stieglitz Collection
그녀의 작품 세계는 꿈의 땅으로 상징되던 미국이란 신세계를 등지고, 사막과 하늘이 맞닿은 오지와 평원과 하늘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녀는 전화는 물론 전기와 수도 시설조차 없는 문명의 변경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황무지의 사막이건만 오키프의 붓끝에서 그려진 사막, 짐승의 등뼈로 시선을 끌어 잡으면서 이토록 웅장하고 수려한 생태적인 원시의 붉은 사막으로 태어났다. 볼수록 장관을 이루는 이 설레임의 신비가 경탄스럽다.
Jack in the Pulpit No. IV 1930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이 원시적인 그림. 거치른 야생성을 논하기엔 너무도 아름다운 단순화된 붉은 사막의 이 그림이 봄바람과 함께 나를 사막으로 내 몰았다. 봄이라는 계절적인 탓도 있지만 그녀의 사막을 주제로 한 신비스러운 그림들에 이끌리듯 따라 나섰던 여행길이다.
오키프의 사막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나 또한 같이 느끼며 동경으로 설렌다.
Iris(Dark Iris II) 1929
그녀의 작품들에게서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게 한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사인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왜 작품에 싸인을 안하냐고 물으면 “자신의 얼굴에 사인하는 사람 보았어요?”고 반문을 했다고 한다.
Series 1 No.1
그녀를 평생 동안 지탱해주는 것던 그림이었고 나중에 노안으로 시력을 잃어갈 때도 최후의 순간까지 필사적으로 그림을 놓지 않았다. 1800년 말 1900년대 초반, 참정권도 없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제약을 보란 듯이 극복하고 일어섰던 오키프였다.
스티클리츠와의 운명의 만남
오키프가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때인데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라는 당대의 유명한 사진작가를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스티글리츠가 운영한 뉴욕의 ‘291갤러리’는 유럽의 거장들인 피카소, 세잔느 등의 작품을 미국에 처음 소개하던 유명한 곳으로 현대미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미국 내 첫 화랑이었다. 오키프의 친구가 그녀 몰래 스티글리츠에게 그림을 보여 준 게 인연이 되어 평단에서 주목을 받게 되면서 그녀는 화가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Pelvis Series, Red with yellow 1945
“드디어 진짜 여성 화가가 나타났군요.” 스티글리츠의 말이 이어졌다. “(이 그림을 그린 여자는) 보통 여자가 아닙니다. 사물을 보는 통이 크면서도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입니다. 이 그림들은 제가 그동안 봐온 것들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작품들입니다. 언젠가 꼭 전시회를 열고 싶군요.”
오키프가 스티클리츠를 만나게 된 동기, 즉 그녀의 친구 폴리츠가 주홍색 코스모스와 자주색 피튜니아 꽃그림을 그린 파스텔화와 소묘를 스티클리츠에게 보여주었을 때 한 말이다. 그녀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Pink Sweet Peas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직접 편지를 쓴다. “제 그림을 보신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그림이 왜 좋은지 기억하신다면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그림으로 말하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신 것 같아서요.”
스티글리츠는 제법 유혹적인 어투로 답장을 쓴다. “작품에서 느꼈던 것을 말로 표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직접 만나 인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전할 수도 있겠지요. … (당신의) 작품이 제게 큰 기쁨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군요. 정말로 놀라웠소. 자신의 내면을 진정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소.”
다른 화가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 그룹전이긴 했지만 마침내 오키프 작품이 291화랑에 내걸렸다. 스티글리츠는 자신이 운영하던 사진 잡지에 극찬의 논평을 싣는다.
“오키프의 소묘작품은 정신분석학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 291 화랑에서는 한 여성이 종이 위에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 작품을 결코 본 적이 없다”
스티글리츠는 그녀가 캔버스에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본 최초의 타인, 그것도 그녀를 도와주고 키울 수 있는 ‘힘을 가진’ 타인이었다. 그후,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개인전을 ‘291갤러리’에서 열어 주었다.
“그녀의 작품이 휘두르는 매력은 힘, 해방, 자유”
화랑 291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 당시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던 조각가 브랑쿠시의 간단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평이었다.
Amapolas 1950
오키프의 뜨거웠던 삶과 사랑
스티글리츠의 주선에 의한 성공적인 첫 그룹전 이후 전도양양해보이던 오키프의 앞길이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까지 사망하여 잠시 휘청하는 듯했으나 실의에 빠진 그녀를 다잡아 세운 사람이 바로 스티글리츠다. 그는 변덕스럽고 감수성이 예민한 오키프의 성격을 받아준 특별한 남자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던 오키프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망 없는 황무지에서 그녀를 구해준 구원자나 마찬가지였다.
스티글리츠 입장에서도 오키프는 특별한 여자였다. 그는 오키프가 사고방식과 감정이 분명하고 펄떡거리는 맥박이 느껴질 정도로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자신이 평소 갈망해오던 순수와 직관의 여성상이기도 했다.
Large Dark Red Leaves on White 1925
두 사람이 동거하던 1921년 2월 스티글리츠는 사진전을 열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미국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작로 뉴욕 예술계를 주름잡는 명사로서 145점의 흑백사진 대부분이 사랑하는 연인의 온몸을 정교하게 그린 듯한 사진으로 가슴 배 음부 가랑이를 과감하게 확대해 양감이 풍부한 토르소처럼 보일 만큼 화면 가득 엉덩이나 다리만 나온 사진들은 그 시절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사진 작법(作法)으로 단순한 나체사진이 아닌 선정적인 사진으로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진속의 오키프는 엄숙하고 섬뜩하며 수수께끼 같은 젊지도 늙지도 않았지만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이상하게 음침하며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여자의 이미지’ 사진비평가 자넷 말콤의 평이다. 그래서 그녀는 스티글리츠의 정부, 창녀, 누드모델이라는 멸시와 편견으로 수치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결국 이 엄청난 스캔들로 스티글리츠는 전처와 이혼하고 1924년 조지아 오키프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당시 조지아 오키프는 나이 37살, 스티글리츠는60세였다. 반지나 피로연 같은 어떤 의례적인 형식도 갖추지 않은 결혼식이었다.
Black Door with Red 1954
오키프는 남편 성(姓)을 따르지 않았다.
“왜 내가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불려야 하나 생각했지요. 결혼 이후 사람들이 나더러 스티글리츠 부인이라고 할 때마다 나는 오키프 양이라고 정정했어요.”
애송이 신인과 예술계 거장의 결합이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당차던 오키프의 모습이다.
사실 두 사람의 결합은 너무나 다른 둘의 결합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를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오키프는 자연주의적 삶에 익숙한 시골 사람이었다. 스티글리츠는 늘 사람 속에 있기를 원했지만 오키프는 고독 속에 있기를 원했다. 스티글리츠는 토론 광이었던 반면, 오키프는 침묵하고 경청하기를 즐겼다.
Green Oak Leaves
오키프는 스티글리츠에 의해 ‘만들어진 삶’을 살아야 했다. 자신을 찍은 사진작품으로 스티글리츠가 유명해질수록 오키프는 정부(情婦)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녀는 사랑을 나눈 후 비좁은 작업실에 기진맥진해 누워 있던 순간조차 기꺼이 애인을 위해 피사체가 되어주었지만 이로 인해 자신이 그러한 혹독한 시련을 겪으리라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스티글리츠의 도발적인 사진과 성적(性的)인 해석에 영향을 받은 평론가들은 오키프의 그림을 오로지 성적으로만 해석하려 들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당해야 했던 이 엄청난 시련에 자기 정체성이 확실한 그녀로선 끊임없이 평단의 편견에 맞서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었다.
“남자들은 내가 하고 있는 일(그림)을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때때로 괴로운 심중을 토로하곤 했던 오키프다.
“평범하게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 곳에 살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으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말하고 싶다고 모두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바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전시회에서 예술가로서 여자로서 겪는 절망에 대해 한 말이다.
Music Pink & Blue II 1919
오키프의 크게 확대된 꽃을 보고 많은 사람은 관능적이라 한다.
불타듯 강열한 색깔,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커다랗게 확대된 꽃술과 꽃잎은 여성의 은밀한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고들 한다. 지금이야 꽃그림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꽃 나부랭이’가 그림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들이 지배하는 예술 세계에서 여성성을 의미하는 꽃을 ‘예쁘다(pretty)’라는 말은 비아냥거림이었다.
Cow's Skull with Calico Roses 1931
“결국 나는 타인은 신경 안 쓰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진짜 중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나의 그림을 그렸다.”
오키프는 여자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당해야 하는 시련에 대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는 길은 남성과 똑같이 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이 갖고 있는, 즉 여자만이 갖고 있는 감각과 경험, 배경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그림을 보고 그림이 아니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림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림에 대한 그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내 방식대로 가는 게 최선 아닌가.”
한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성공하느냐 못하느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알리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White Rose with Larkspur No. 2 1927
Two Calla Lillies on Pink 1928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ia Alfred Stieglitz Collection
스티글리츠가 소장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스티글리츠는 말년까지 오키프의 속을 썩였다. 오키프보다 열여덟 살이나 어린 돈 많은 유부녀와 노골적으로 바람을 피우며 오키프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설상가상으로 오키프는 가슴절제수술, 대상포진, 심장병, 나중에는 시력상실까지 갖은 병마와 싸우며 수시로 우울증에도 빠졌다.
Red Canna 19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100세 가까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정신력과 철저한 식이요법에 따른 자연주의 생활이 큰 요인이었다.
현란한 원색의 축제 같다. 빨간 칸나가 한여름의 짙푸른 녹음 속에서, 정열을 뿜어내는 듯 눈부시다.
후안 해밀턴(Juan Hamilton)
말년에 그녀 곁을 지킨 한 젊은 남자를 빼놓을 수 없다. 오키프가 여든여덟 살이 되던 해부터 마지막 10년을 함께 한 남자, 후안 해밀턴(Juan Hamilton)은 예술가를 꿈꾸던 20대 청년이었다. 무작정 오키프 집을 찾아와 “도울 일이 없겠느냐”는 말로 인연을 맺었다.
해밀턴은 오키프가 인생에서 가장 약할 때 그녀에게 왔다. 동이 트면 차를 몰아 오키프 집으로 가서 함께 아침산책 하는 것으로 시작해 운전기사가 되어주고, 편지에 답장을 해주는 비서 노릇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악담이 쏟아지자 해밀턴은 이렇게 대응했다.
“자기 또래들과도 제대로 된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예순 살도 더 많은 사람과의 우정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Series I No. 8 1919
실제로 두 사람은 단순히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넘어 경험과 생각을 교환한 연인이었다.
죽어서 유명해진 예술가들의 삶에 비하면 살아서 인정받고 부(富)를 누리며 국가 훈장까지 받은 오키프이다. 말년에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그림을 전시하고 때로 자신조차 놀랄 정도의 유명세를 즐겼던 그녀는 생애 마지막까지 한 청년과 사랑도 나눴다. 서른네 살의 해밀턴은 날이 갈수록 어린아이 같아지고 잊어먹기도 잘하는 애인의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몰락에 낙담해 다른 여인과 결혼도 했지만 그 뒤로도 오키프 곁을 떠나지 않았다.
Blue and green Music 1919
오키프는 1986년 100회 생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숨을 거뒀다. 그리고 말년의 삶의 터전이었던 뉴멕시코 골짜기에 한줌 재로 뿌려졌다. 생전 유언대로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추모식도 치르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을 지킨 젊은 애인, 자신의 조수이자 친구였던 후앙 해밀턴(Juan Hamilton)에게 자신이 평생에 걸쳐 작업한 모든 작품들과 재산의 3분의 2를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1986년 죽기 전까지 자신이 해밀턴과 결혼한다고 믿었던 오키프였다.
후일 해밀턴의 부인인 안나 마리는 그녀의 수집품과 책, 옷 등 유품을 박물관에 기증한다. 그림만큼이나 격정적인 그녀의 삶과 사랑이었다.
Red Anemone and Calla Lillies
‘붉은 아네모네와 칼라’는 200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620만 달러에 낙찰, 여성 화가로 최고가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작품은 현재 미술시장에서 상종가다.
Pelvis with Shadows and the Moon Oil on canvas 1943 101.6 x 123.8 cm Private Collection
스티클리츠가 사망한 후, 뉴멕시코의 광활한 사막에 영원히 정착하면서 대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키프는 ‘꽃과 두개골’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과감하게 확대하고 잘라 내서 사물의 정수를 파고드는 그녀의 작업은 단순화를 통해 사물이 지닌 핵심적인 아름다움을 최대로 증폭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시선을 돌리고 싶은 이 부담스러운 골반 뼈가 삭막한 사막의 한 가운데서 은은한 달빛 아래 이토록 감성적인 멋진 추상화로 변신했다.
Ladder To The Moon
오키프의 소망일까?
달마저 머언 드넓은 하늘에 달빛이 푸르고 맑다. 사다리를 광활한 사막의 하늘 가운데 걸어놓았다. 오르고 싶은 소망이 비단 달 뿐이랴! 그리움도, 미련도, 꿈도 모두가 달을 향한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을.....
달빛내린 사막의 푸른 밤이 투명하고 고적한.... 아름다운 환상이다.
Grey Line with Lavender and Yellow 1923 -1924
Black Mesaland
과감하게 단순화한 구도의 산들이, 강열한 색감과 함께 오키프의 자연에 대한 탐미적인 열정을 느끼게 한다. 기운차고 신선하게 닥아 오는 감동스러운 풍경이다.
Oriental Poppies
오키프는 꽃의 이미지만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보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로 여린 꽃잎이 촉촉이 젖어 있는 듯 찬란하고 유혹적인 느낌으로 살려냈다.
Summer Days 1936
저녁이면 바람이 윙윙 불어 대는 삭막한 붉은 사막의 하늘에 뿔을 가진 앙상한 짐승의 해골이 걸려있다. 부우연 안개 속에서 우러르며 피어난 작은 한 묶음의 꽃. 이 작은 꽃이 이 삭막한 사막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듯 살아있는 환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신비의 아름다운 꿈같은....
Light Iris 1924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와 숨겨진 관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율동적인 곡선과 탐미적 색채를 통해 신비스럽고 상징적이며 관능적인 모티프를 표현했다. 몽환적인 색감, 부드러운 곡선의 겹겹의 여린 꽃잎으로 싸여있는 오묘한 분위기의 이 그림처럼 부드럽고 단순한 커다란 꽃 그림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독특한 이미지로 평가받는다.
Black Iris Ⅲ<검은 붓꽃 III>
가장 유명한 대표작인 화면을 가득 메운 붓꽃, 그 속엔 꽃의 비밀스런 중심과 생식 기관이 검은 음악처럼 조용히 꿈틀거린다. 지독히 관능적이다.
존재의 장식적 베일을 벗겨내면서 생명의 근원을 부드럽게 더듬어가는 오키프의 시선은 붓꽃의 숨겨진 욕망을 속속들이 들춰낸다. 그 욕망은 근원적이고 그래서 불편하다. 그래도 그것을 어쩔 수 없이 감내하게 하며 그러면서 우리의 시선을 서서히 신비한 세계로 이끈다. 그녀의 삶처럼....
오키프의 그림을 명상하듯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랑을 통해 체험하는 여인의 절정의 경지가 녹아 있기 때문 아닐까! 황량한 사막의 그 앙상한 해골에 꽃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던 오키프. 그녀의 꽃은 사랑이었고 나는 사랑으로 가득히 넘치는 그녀의 그림 앞에 깊은 시선으로 머문다.
고요히 일렁이는 부드러운 물길 푸르게 부푼 강물 위에 ‘오키프의 꽃’ 한 잎 따서 가만히 띄운다. 꽃 잎 위에 고이 누이는 여인의 꿈꾸는 마음...꽃으로 피어난다.
아스라한 환영인가....... 몽환인가.......
아지랑이 가득내린 아른아른 보오얀 강물, 아득한 물 길 따라 흔들리며 멀어져가는 아름다운 그대... 5월 강.
꽃처럼 흐르는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의 마음이리니....
Yousuf Karsh 작 76.2 x 101.6 cm 1956 90세때 뉴멕시코 고스트렌치에서 Yousuf Karsh Foundation
아비퀴우에 있는 그녀의 집(조지아 오키프 재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박물관)에 걸려있다.
미국의 여류화가로 미국 현대 화단에서 최고의 모더니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이다. 위스콘신 주 선 프레리 근처 농장에서 태어나 시카고 미술학교, 1907년 뉴욕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공부했으며 처음에는 상업미술 활동을 했다. 1912~1916년에 텍사스 등의 학교와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오키프는 서유럽계의 모더니즘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추상 환상주의의 이미지를 개발하였다고 평가되는 화가이다. 미국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지고 사랑받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살아생전부터 이미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화가로 평가 받으며 오늘날 20세기 미국 미술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조지아 오키프이다.
포드와 레이건 두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와 예술의 훈장을 받았고 하버드 대학을 위시한 수많은 대학에서는 그녀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주었다. 자서전으로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가 1976년에 발간되었다.
남편 스티클리츠가 사망한 뒤의 후기 작품은 뉴멕시코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주로 그곳의 맑은 하늘과 사막 풍경을 그렸고 1970년에 휘트니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하였다. 오키프는 1986년 3월 6일, 98세의 나이로 뉴멕시코 주의 샌타페이에서 사망하였다.
싼타페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미국 남서부 뉴멕시코 주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도시 샌타페이.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이곳을 ‘햇살이 춤추는 땅’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코발트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짙푸르고 맑은 하늘과 햇살이 눈부신 곳이다.
인구 7만의 작은 도시지만 대학이 4곳, 출판사가 27개,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이 8개, 갤러리가 250개나 되는 지적(知的)인 도시다. 시민 여섯 명 중 한 명이 예술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지금도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1000여 명의 예술가가 모여 산다고 한다.
이곳의 중심에 미국 현대미술의 거장 조지아 오키프(1887~1986)의 치열한 삶과 그녀의 화업(畵業)을 집대성한 오키프 미술관이 있다. 오키프 미술관(www.okeeffemuseum.org)은 1997년 한 독지가의 열정으로 만들어졌다.
허름한 폐광촌이던 이 도시. 그녀는 서른 살 때인 1917년 기차여행 중 이곳을 처음 만난 뒤 기회만 있으면 몇 년에 한 번씩 이곳을 찾았다. 62세 때인 1949년부터는 아예 정착해 죽을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그녀의 강렬한 꽃 그림은 이곳 거주를 기점으로 풍경화와 뼈, 식물기관, 조개껍데기, 산 등 자연물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그림들로 변모한다.
“예술에 관심이 있고 특히 오키프의 드라마틱한 삶에 매료된 세계인들은 샌타페이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예술가 정신을 세례 받는 느낌을 받을 것” 바버라 불러 오키프 미술관장의 말이다.
<여행단상>
붉은 사막의 영원한 꽃
나를 설레게 하는 생태적인 원시의 사막 그림들, 오키프의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 찬 붉은 사막의 아름다운 그림 때문에 항상 내재해 있던 머언 원시의 자연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불쑥 불거지듯 나를 자극하여 그녀의 작품 편집을 하다말고 결국 집을 나서고야 말았다. 산란한 봄바람이 덩달아 나를 떠밀었다.
멀고도 먼 길, 불붙듯 뜨거운 태양아래 진종일, 몇 날 며칠을 그 광활한 중동의 사막을 헤매듯 떠돌던 나. 발가락이 부르트고 물집까지 생겨 힘들고 고달픈 고행 길이었겠지만 내 안에서의 뜨거운 열정과 감동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거치른 돌사막의 산허리를 돌다가 가파르게 타고 넘으며 세찬 모래바람에 휘몰리다가, 고대의 신비의 옛 터에서, 탄성의 웅장한 붉은 바위의 협곡으로... 붉은 모래 바람이 날리는 황량하게 펼쳐진 끝없는 모래사막에서 태평스런 낙타무리가 지친 나를 반겼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그 멀고도 광활한 사막을 얼마나 걷고 넘으며 헤맸는지... 사막에 숨어있듯 어쩌다가 뜨이던 마치 신기루나 같은 마을, 파란 나무 몇 그루에 몇 채 안 되는 작은 성냥갑 같은 사각형의 집들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랍인의 작은 마을들이, 돌사막의 바위 산자락에 걸렸다 사라졌다 하면서 어느덧 붉게 타며 지는 서녘 해와 함께 까마득히 한 점으로 멀어져 갔다.
그 큰 물집은 저절로 터져서 저 혼자 아물었는지, 아니면 지쳐서 둔감해 졌는지 감각조차 없어졌다. 지칠 대로 지친 육신은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환상, 이 감동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풀 한포기 없는 붉고 험난한 돌각 산 정상에서의 광활하게 굽이치며 파도치듯 끝 모르게 뻗어 나갔던 거칠은 모래 산들의 그 경이롭고 웅장하던 장관을....! 온통 내 시야를 가로막듯 들이차고 순간 숨이 멎도록 가슴에 부딪던 그 환상의 사막 한 가운데에 내가 있다는 이 믿기지 않는 사실에 울컥 울 것도 같았다.
이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의 고달픈 여정은 말 그대로 나만의 경이로운 감동이고 열정이고... 원시적인 낭만의 끝없는 떠돌이였다. 그런데 누구의 뜻이었을까, 내 마음을 그토록 읽을 줄 아는 이는....
양떼들을 이끌고 물과 풀을 찾아 떠도는 유목민 베드윈 족의 텐트에서 내 열정의 보답일까! 나는 오키프의 해골을 보았던 것이다. 그 섬뜩하던 해골들이 이제는 반가움으로 닥아 오다니... 가슴이 뜨거워 졌다. 그 삭막하고 건조한 두개골에 아름다운 꽃을 달아 준 오키프가 내 안에서 기쁨으로 설레었다. 이 황량한 사막에 파묻혀서 오로지 사랑과 열정으로 그림에 자신을 불태우며 산화한 오키프. 크고 붉은... 아름다운 꽃을 나도 따라 그녀에게 고이 정성을 다해 달아주었다. 기쁨과 감동으로 전율하던 사막의 영원한 꽃, 오키프와의 만남이었다.
어쩌면 고달프게 헤매던 사막의 환상 같던 추억과 함께 오래오래 오키프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자신을 끝까지 지키며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불살은 아름다운 여인. 조지아 오키프에게 무한한 갈채를 보낸다.
그녀의 그림이 더 가까이 닥아와 환영처럼 일렁인다. 무언지 모를 환상에 휘몰리는 아름다운 이 오묘하고 몽롱한 감정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나는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 오키프의 꽃이 되어...
Jordan에서
2013. 5. 14. 글, 편집 songbird
푸른 밤하늘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그 하늘을 가득 덮듯 힘차게 치솟은 검푸른 나무에 내 시선이 그대로 못처럼 박혔다. 그녀의 단순하고 강열한 색감의 신비로운 사막 풍경화가 한사코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시작했는데....난갑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오랫동안 가까이 하면 할수록 화면 가득히 채워진 단순한 꽃들이 아름다운 환상으로 닥아와 나를 꿈꾸듯 젖어들게 했다. 격정적인 작품들 속에서 그녀의 삶의 대 서사시를 보는 듯도 했다. 부드럽고 황홀하게 일렁이는 몽환적인 그녀의 그림세계.
단순한 편집을 위해 시작한 거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가까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마음이 이런 건가 보다. 또 다른 나의 열정과 사랑이겠지. 감사하고 뿌듯하다. 오키프와 같이 했던 모든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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