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잃어버리기/문정희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나의 자리인가요 탑처럼 서서 듣는 저 종소리가 나의 시인가요 종소리 속의 쇠 울음, 짐승의 순간 애달픈 육체
기꺼이 길을 떠나 기꺼이 길을 잃어버린 대낮 시간이 탕약처럼 졸아든 고도(孤島)의 한가운데 길이 물이고 물이 길인가요
길을 잃기도 쉽지 않아 미로와 수로 사이 그냥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길*인가요
나는 외로움 부자, 자유 부자, 가난 부자 온몸으로 꽃 한 송이 눈부신 노숙
오직 허공을 머리에 인 가벼운 허영의 깃털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