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소설김삿갓]72. 봄은 다시 오건만

창포49 2010. 11. 16. 18:21
 

 

   

  

 

72. 봄은 다시 오건만,

 

 原州에서 驪州, 利川을 거처 廣州 땅에 이르렀을 때는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세상에 속일 수 없는 것이 계절의 감각이어서 엊그제까지도 산길을 걷자면 추위를

느꼈건만 立春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언덕길을 올라가려면 등골에 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산길을 홀로 걷던 김삿갓은 문득 白樂天의 봄에

대한 시를 연상하였다.

버들은 힘이 없는 듯해도 가지가 움직이고
못에는 물결이 일며 어름이 녹아나네.
이런 날이 다시 올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봄바람과 봄물이 한꺼번에 오는구나.


柳無氣力枝先動
池有波紋氷盡開
今日不知難計會
春風春水一時來

산속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가고 오는 세월의 발자취 소리가 귓가에 역력히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감흥이 그토록 절실하기에 김삿갓은 자신도

한 수의 시가 없을 수 없었다.

해마다 해마다 해는 가고 끝없이 가고
날마다 날마다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해는 가고 날은 오고 오고 또 가는데
천시와 인사가 모두 그 속에서 이루어지네.


年年年去無窮去
日日日來不盡來
年去日來來又去

天時人事此中催

이 시는 스물여덟 자 밖에 안 되지만 그 중에 年, 日, 去, 來 자가
각각

넉 자씩 모두 열여섯 자로 이루어졌으니 똑 같은 글자를

네 번씩이나 반복해 가면서 天地의 流轉을

이토록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수법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처럼 김삿갓은 천지에 무르익어 오는 봄빛을 마음껏 완상하며

길을 무심히 걸어오다 보니 三田渡(지금의 송파) 길에

大淸皇帝功德碑라는 커다란 비석이 눈에 띠었다. 

 
                                                                                              계속...
 
 

[이동원-봄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