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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민의 화가 박수근의 작품세계

창포49 2010. 4. 1. 15:54

** 박수근 (1914 - 1965)의 작품세계 / 1950년대 **

[ 마을 / 1950 후반 ] [ 마을 풍경 / 1955 ] [ 모란 / 1950년대 ] [ 복숭아 / 1957년 ] [ 빨래터 / 1954년 ] [ 빨래터 / 1950 후반 ] [ 빨래터 / 1950 후반 ] [ 산 / 1950년대 ] [ 석류 / 1954년 ] [ 시장 / 1950년대 ] [ 시장 / 1950년대 ] [ 시장 / 1950년대 ] [ 시장의 사람들 ] [ 아기보는 소녀 / 1953년 ] [ 아기업은 소녀 / 1950년대 ] [ 아기업은 소녀 / 1950년대 ] [ 아기보는 아이들 / 1950년대 ] [ 앉아있는 여인 / 1958년 ] [ 여인들 / 1950년후반 ] [ 우물가(집) / 1953년 ]
 







 



 



 



 



 



 



 





 




 
 
 

 


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지만, 밀레의 "만종"이란 그림에 큰 감동을 받아 그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는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꾸준히 하였다.
1932년 "조선 미술 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가
입선되면서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노동자,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박완서 소설 "나목"의 등장 인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PX에서 그림
 
그러나 힘들고 고단한 삶속에서도 그는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그렸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박수근 화백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생전에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보다 미국인 애호가에 의해 외국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
그로 인해 궁핍한 삶이지만 근근히 작품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한다.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를
보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화가의 이러한 마음은 곧 그의 예술의지가 되어 서민의
모습을 단순히 인상적으로 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전문용어로 말해서 철저한 마티에르를 살린 평면화작업을 추구하게 되었다.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한 대상으로서의 서민 모습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의 서민이다.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주의]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은 부동의 기념비적 형식이 되었으며
유럽 중세의 기독교 이론과 비슷한 성서의 분위기가 감지되
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뜻과 따뜻한 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리하여 박수근은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거룩한 세계를 보여준 화가가 되었고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A Comme Amour / Richard Clayderman

 



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글쓴이 : 정중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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