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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벼랑 바위언덕 넘어 자욱한 운무 복사꽃밭 ~~ 몽유도원도 그리워 ~~

창포49 2012. 4. 23. 17:56
낙월봉< 落月峰 > 벽련봉< 碧蓮峰 >~~ 안녕하세요 ? 그렇게도 추웠던 기나긴 겨울 추위가 지나가고 꽃피는 4 월에 느껴보는 꿈길 낙원 무릉도원 ~~ 꽃은 반쯤 피었을때가 제일 아름답다는데 ㅎㅎ 글쎄요 ?? 바로 아래 복사꽃 사진은 2012 년 4 월 19 일 카메라에 담아 본 서울 도심 광화문 한복판 빌딩숲 한켠에 피어난 복사꽃이라니~~아아~~신선하고 산뜻해 보였답니다..서울 중심 한복판에 복사꽃~~와~아 ~~ 꿈길 거니는듯~~지나간 옛날 우리의 선조님들의 흔적을 통해서 상상속이지만 잠깐이나마 만나뵐수 있는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인왕산 정상은 낙월봉 <落月峰>이고 지금의 기차바위로 불리는 거대한 회색 바위 봉우리가 벽련봉 < 碧蓮峰>이랍니다.. 안평대군이 꿈 꾸었던 드높은 이상향의 세계 아득히 멀어져간 그의 무릉도원 구경 한번 떠나가 볼께요.. 아아~~꿈길 산길 복사꽃밭~~무릉도원 그리워라~~몽유도원도~~그 옛님 보고파라~~몽롱한 무릉도원 복사꽃밭~~몽유도원도의 꿈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한양땅 무릉도원이 바로 이곳 인왕산 아래 벽련봉..지금의 기차바위 아래 지금의 부암동이 내려다 보이는 무계정사 주변이란 사실 알고 계셨나요 ??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림과 같은 풍경 이곳이지요..지금부터 몽유도원도의 그 이상의 세계 무릉도원 찿아가 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아득히 멀어져간 ~~그옛날 그해 화사하게 꽃이 만발했던 어느 봄날에~~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당대 최고 화가 안견에게 지난밤 꿈속에서 보았던 풍경 무릉도원 . 복사꽃이 화사하게 아름답게 피어있는 산길을 거닐고 있었을테지요.. 이곳은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로서~~안견 그대여~~내 꿈 이야기 들어볼텐가 ?? 지난밤 꾼 꿈이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하고 몽롱했던지말일세~~꿈속에서 박팽년과 더불어 홀연히 산길을 가고 있었다네.. 첩첩이 둘러선 산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 험준한 바위들이 널려 있고 복사꽃나무와 우거진 숲 사이로 길이 끊어질 듯 하더니 나는 그만 드디어 길을 잃고 말았네. 갈 길을 몰라 막막해 하는데 홀연히 무명옷에 산관을 쓴 사람이 나타나서 절을 하고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를 몇 굽이 돌아가면 바로 그곳이 도원이라고 말하지 않겠나 ?

수십 구비를 돌고 또 수십 개의 개울을 건너 높은 바위언덕을 기어 넘으니 홀연히 동중이 시원히 터지면서 나 스스로 여기구나 싶은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네. 그 넓이가 2 ~ 3리는 될까~~ 사방의 산들은 병풍같이 우뚝 솟아있고 운무는 자욱한데 아침햇빛이 들면서 안개가 밑에서부터 개이더군~~~ 마을에 가득한 복사나무 꽃이 드러나 보이고 동중에는 초옥들이 있어 사립문이 반쯤 열렸으나 개 짖는 소리도 닭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네.



앞의 강가에는 일엽편주가 물결에 일렁이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데 이 모든 정경이 너무나 평화롭고 신비로워 마치 신선이 사는 마을 같았네그려~~~어떠한가 ?? 안견~~ 지난밤 본 꿈속에서 본 황홀한 그 풍경 그림으로 그려주게나~~내 두고두고 보고싶으이~~



몽유도원도 윗그림의 왼쪽부분 평평한 들판하며 산길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를 표현한것이겠지요..

몽유도원도의 중간부분으로 왼쪽 현실에 세계에서 드높은 이상 세계인 오른쪽 무릉도원으로 가는데



이처럼 헌준한 바위 암봉으로 막히니 어려운 고통과 고난이 우리네 인생살이와 딱 맞아떨어집니다..



몽유도원도의 오른쪽 복숭아 꽃밭~~햐~아~~너무나 아름답고 몽롱하고 안개 자욱한 도원에 한줄기 아침햇살 비치니~~~



이것을 꿈꾸는 예나 지금이나 드높은 이상세계 바로 꿈이요.소망이요..희망이 아닐런지요 ???

아주 먼 옛날 선조님들의 느낌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낄수만 있다면 행복하겠네요.. 인왕산은 그 오랜 옛날부터 인왕산 호랑이 아시지요..호랑이가 나타날정도로 무서운 산이었지요.. 인왕산 오르면서 국사당 앞에 도착했어요..명성황후님께서 피신해 있었던곳 기도하며 눈물 많이 흘렸던 슬픈 역사의 현장이네요.. 태조 어진을 비롯한 소중한 우리 문화재가 이곳에 소중히 남아 있답니다..
인왕산은 그 옛날부터 선비와 학자 명사 시인 묵객 사대부들의 별장이 특히나 많이 있었으면서 계곡을 흐르는 맑은물 아름드리 노송 우거진 소나무들 그리고 바위와 복사꽃 너무 아름다운 무릉도원이었다고나할까요... 선바위 언제 바라 보아도 마음이 포근해지네요..장삼을 걸치신 스님 2 분이 걸어가는듯이 보여지는 바위 무학대사의 사랑이 대단하여 이 선바위를 성곽 안에 두려했지만 정도전에 심한 반대로 성곽 밖에 이처럼 위치하고 있구요..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림도 사실 한양땅 인왕산 아래 자하문 밖 지금의 부암동 석파정 일대가 꿈속에서 안평대군이 본 저멀리 북한산 높은 봉우리들 빙 둘러져 있고 복숭아나무 꽃밭에 맑은 계곡의 물이 흐르고 아름다운 꿈속에서 본 그곳이 바로 인왕산 아래랍니다.. 아래 그림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중에서 인왕산에 위치한 자기집을 그린 인곡유거라고하는데 그 옛날로 함께 가실까요~~~자~~먼 옛날로의 슬프고 가엾은 고운님들의 사연 찿아갑니다~~~~

계곡에 흰구름 버드나무와 이엉을 얹어 만든 볏짚으로 지붕위를 마무리한 일각대문 만들고 조그마한 대문에 포도넝쿨 기어가는 그림에 어쩌면 풍부한 감성력 대단하고 오동나무 마당에 살아 숨쉬는듯한 한폭의 그림이지만 정겹고 조용한 인왕산 자락에 겸재 자기자신을 저 방안에 그려 놓고 있군요..자연미의 극치라고나할까요 ? 기억을 더듬어 찿아가니 옥인 파출소 뒤 군인 아파트 덩그러니 전혀 이느낌 흔적없이 사라졌네요...에고고~~님이시여~~흔적이라도 느껴 보려던 나 힘없이 발길 돌리게 되네요..그림속에서나 만나야겠네요... 사직단이라고하지요..사직공원입니다. 서울사람 중에서 사직공원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데 아마도 둘러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을 듯 … 저도 자주는 못왔어도 여러번은 다녀왔답니다. 사직단이라 쓰인 대문 뒤로 4 각형 돌로 잘 정돈된 사직단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을 모시고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고, 사면으로 둘러싸인 두 겹의 담장 안에 사직단이 놓여있구요. 사직이라함은 종묘와 함께 국가 즉 나라를 의미하는 말로서 우리들 흔히 사극에서 ..전하..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사직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 무척 심려되옵니다..감히 진언 드리옵니다..라구요..사직이 위태롭다라는 표현을 다들 아시지요? 제물로 당연히 고기와 술 과일 등등 제단에 쌓아 놓았을테지요..향불 가득히 피어 연기 피어 올랐겠네요... 사직단을 뒤돌아 오르니 운동장이 나오고 바로 조금 오르니 단군성전입니다.안내판을 보니 단군성전 또는 백악전이라고 부르는데 우리 겨레의 시조인 단군할아버지를 모신 곳이로군요. 건물내 정면에 단군할아버지 모셔져 있네요.

우리 민족의 신화로 우리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단군할아버지를 이렇게 만나뵈오니 정말 눈시울이 서서히 뜨거워져 오네요.두손 모아 합장하고 기도를 했어요..무언가 일이 잘되고 사업도 잘되고 국가도 부흥하고 뭐 그랬답니다..얼핏 보아서 좀 초라하게 보여집니다..작은 규모도 그렇고 좀더 크고 멋지게 했더라면하는 마음요..한민족의 시조이신데 이정도밖에 대접 못받고 계시는구나~~~안타깝고 마음 아파옵니다.. 지금은 아스팔트길 북악 스카이웨이 드라이브길이 구불구불 인왕산을 옆으로 자동차 달리니 예전엔 상상도 못할일이었겠지요..등과정터 표지석..활쏘기 훈련장인가봅니다..지붕 저너머로 과녘이 조그맣게 보이고 서울 도심 한자락에 이런곳이 있었다니 새롭습니다..옛날엔 활쏘기가 자주 열렸답니다..하기야 요즘에도 올림픽 종목에 양궁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지만 우리네 여전사들 양궁에서 금메달따는거 다 이유가 있었다는걸 알수 있지요.. 선바위 맞은편 산은 무악이라하며 길마 일명 안산이라고하며 높이 295 미터 이쪽 인왕산이 338 미터 양쪽 산 사이가 바로 무악재 고개가 있죠..
개성 평양으로 가는 교통 요충지며 국방 측면에서 험준한 양쪽사이 산 좁은 저 아래 무악재 고개를 넘어갈려면 너무 무서워 10 여명은 모여야 함께 출발하였다고합니다..장작나무 땔감장수 비단장수 약장수 과거시험 보러 한양으로 들어오는 선비님들 옛 고운 님들이시여~~아아~~그시절 그 풍경 그 허름한 옷차림 눈물겹고 애처로운 모습 상상해봅니다.. 스님 두분께서 나란히 서서 걸어가며 이야기 나누는듯한 바위 모습이네요.. 무악재 고개 넘다보면 무악재 안산쪽에 박정희 대통령의 도로확장 기념비가 친필로 새겨져 있기도합니다..좁고 가파른 험준한 고개를 넓고 완만하게 마들었던 지금의 무악재 고개지요..무악재 고개 땅속으로는 지하철 3 호선이 달리고 있구요..너무나 많이 변해진 오늘날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요.. 인왕산 계속 올라갑니다.. 군데군데 기암 바위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고 구름 몰려와 큰비 내린후 맑개 개인 인왕산 휘감고 돌아가는 구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 느낌 상상이갑니다.. 무학대사의 사랑이 가득했던 선바위..지금의 선바위 부근에는 무속인들이 많이 기도처로서 기도하며 개인적으로 찿아오는 가난한 우리 서민들로 붐비는곳이지요..비둘기들이 가득 날아와 제물에 내려와 쪼아대고 있네요..북어포가 나무에 실타래로 묶여져 있으며 쌀알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기도하구요..아무튼 기도하시는 모든이들의 건강과 소원하시는 모든일 이루어지기를 저도 기도합니다.. 인왕산 호랑이 ...2 가지 정도 인왕산 호랑이 전설이 내려오는데 하나는 북한산 효자리 박태성 효자비... 효자 박씨 이야기고 또 하나는 어떤 포수가 암컷 호랑이를 죽이니 숫놈 호랑이가 너무 슬퍼 이곳 범바위에 부딪쳐 죽었다는 ~~~~암튼 이곳 인왕산은 그 옛날부터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는 무서운 산이었슴은 틀림없는가봅니다..요즈음 인왕산엔 토끼 한마리 구경하기도 힘드니 그 많던 동물들도 다 사라진지 오래랍니다..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며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했을 풍수 사상가며 이성계 정도전 태종 임금이신 이방원과 그의 책사 하륜 등등 대원군 이하응도 이곳 인왕산에 올라 경복궁 내려다보며 눈물과 통곡소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구요..아픔의 역사가 너무 많아서랍니다.. 아아~~역사의 몇백년을 거슬러 시간 여행을 하고있는 이시간~~~누군가 금방이라도 나타날것 같은 장수들의 웃음소리며 성곽을 쌓기 위하여 몰려들었던 과거의 무수한 가난하고 가엾던 우리 민초들의 한의 소리 들려 옵니다.. 무학대사님과 정도전같은 그시대 임금의 책사들이며 순찰 돌던 초병들~~치마바위에 치마를 널어놓고 경복궁을 내려다보며 통곡했을 고운 왕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힘없는 중종 임금 왕의 운명이었죠.. 우측에 청와대가 보이고 북악의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선 곳에 녹색 청기와를 이고 있는 건물. 감히 그 곳을 내려다 볼 방법이 없었던 차에 인왕산길이 열리니 불과 십수년전만 하더라도 올수없는 이곳에 김영삼 대통령 문민 시대에 빗장이 풀려 오늘 이렇게 오르는것이죠.아래 사진은 서울의 무릉도원 무계정사입니다 사진 가운데 경복궁의 크고 작은 전각들이 즐비합니다. 조선총독부가 들어섰던 화강암 건물은 철거되어 더 이상 보이질 않는군요. 청와대 앞길 경복궁 맨 뒤쪽 건청궁자리 옥호루~~우리의 명성황후님께서 비운의 마지막을 일본 낭인들의 무자비한 칼에 시해 당하셨던 그곳 옥호루도 제눈에는 보이는군요..서울시내가 지금은 빌딩으로 가득하지만 제 눈엔 초가집 가득하던 그 옛날이 선히 떠 오르는군요..오르면서 내려다본 서울시내 풍경이야기였습니다. 서울 시내가 가까이 다가오죠..그 옛날 옛적에는 초가지붕 초가집 가득했었겠죠..아침 저녁 시간에는 밥짓는 연기 피어 올랐겠네요..무계정사가 어떤곳인지 안내문 읽어봅니다.. 이어지는 성벽 계속 이어지죠..성벽 쌓았을 옛 조상님들의 애환이 느껴지네요..베낭 하나도 무겁다고 땀흘리며 오른것에 비해 하물며 옛 고운 님들께선 수십개 수백개도 아닌 수만개를 오라줄로 묶고 소와 말의 힘도 빌리고 등에 메고 끌어와 쌓았을테니 아아~~힘든 공사에 동원된 옛님 생각에 한동안 감회에 젖어봅니다..성돌 쓰다듬으니 느낌이 바로 전해져 오네요..옛님의 숨결이랍니다.. 가까운 옛날 1968 년인가 그무렵 김신조 일당 31 명이 중무장하여 북한산으로 몰래 산을 넘어와 청와대 습격하려고 인왕산 아래 자하문 창의문 바로 아래까지 침투해와 당시 종로 경찰서장의 검문에 최규식 경무관의 순직하신 공적비가 있는 우리들의 슬픈 역사의 현장입니다..무계정사의 마당에 잡초 가득하고 사람 살지않는 폐가가 되어 있다니..한때는 나는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자의 집이었으니 통곡소리 들리는듯 묘한 느낌을 어찌하랴~~~ 병풍 두른듯 저멀리 북한산이 자리하고 이곳 창의문 일명 자하문 출입문 바닥 돌 좀 보셔요..수백년간 사람들의 왕래를 알수 있겠어요..맨질맨질 닳아진 돌을 바라보며 직접 두발로 서보니 지나간 까마득한 옛님들의 숨결 들리는듯합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더 잘 알려진 오성 이항복 선생의 생가터인 필운대..지금의 배화 여자 고등학교 교실 건물 뒤쪽에 초라하게 필운대라는 암벽에 글씨만이 남아있지만 그분의 생활터전이기도하구요..조선왕조 27 대왕에 1910 년 조선 왕조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이곳 인왕산은 말없이 그 모든 순간 순간들을 보고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어 마음속 저 깊은곳에서 뭉클해져오는 감정 헤아릴길 없습니다..물론 더 오래전 역사까지도 알고 있을 인왕산입니다.. 아아~~드디어 인왕산 정상입니다..바위가 보이시죠 저기 위에 올라서면 나는 이곳에 몇번째로 올라서서 그옛날 그 고운님들 상상하고 있는것일까요 ? 인왕산 산신령님만이 알고 계시겠네요......드디어 정상에서 바위 위에 서면 북한산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문수봉 등등 병풍 두른듯높은 봉우리 빙 둘러 지나고 저만치 한강이 흐르며 북악산과 남산 낙산 그리고 안산 멀리 관악산 보이고 북한산 백운대는 보이지 않지만 시야가 확 트이고 서울 도성안이 손에 잡힐듯 아래에 가깝게 보입니다.. 서울 시내 중심가를 인왕산 정상에서 한참을 내려다 보고 내려갑니다.. 아아~~보세요..저멀리 인왕산 치마바위 보이는군요..다들 잘 알고 계시지요 ? 지금으로부터 약 500 년전인 1506년에 연산군의 폭정으로 박원종이 주도한 반정으로 연산군 몰락하고 진성대군이 왕으로 등극하면서 중종 임금이시죠..진성대군과 10 여년을 함께 부부 생활을 해온 부인 신씨는 반역으로 몰린 신수근의 딸이라는 이유로 역적의 딸이 왕비가 되는것이 두려워 박원종이 수차례 중종에게 협박 비슷하게 하였던바 폐서인으로 만들어 강제로 쫓아버렸으니 정말 요즈음에 생각해보면 몸서리 쳐지는 일이 아닐수 없죠..

쫒겨간 신씨는 매일밤 울면서 낮에는 매일 이곳 치마바위에 올라 경복궁 근정전 침전 경회루가 잘 보이는 이곳 인왕산 바위에 다홍치마를 널어두어 경회루에서 중종 임금이 볼수 있도록 하였으니 참으로 애절한 사랑 이야기랍니다..다홍치마를 널어둔 바위 이름하여 치마바위라고 지금까지도 불려오고 있지요...아아~~슬픈 사랑 이야기~~죽어서도 한곳에 묻히지 못하고 더더욱 가슴 아프고 가엾어서 표현하니 눈시울 붉어지네요..경복궁 경회루에서 바라다본 인왕산 정말 한많은 산 서울 인왕산임에 틀림없네요.. 기차바위로 불려지고 있는 벽련봉이랍니다..왼쪽 사면에서 자일하강할수 있지만 이곳에서 암벽 훈련 거의 없네요.기차처럼 길다란 바위로서 이곳 바위 아래로 맑은물 흐르고 약수터에서 올려다보는 기차바위 모습 참 절경중 절경입니다..그래서 이곳 기차바위 아래가 무릉도원이구요 안견의 그림 몽유도원도 최고의 명당이니 ~~~안평대군이 살았던곳 옛집도 이 바위 아래에 있었으니 옛 고운 님들이시여~~~

노송 우거진 골에 회색 바위 크고 /// 구름 몰려왔다 사라지니 ///흐르는 냇물에 물소리 드세구나 ///무수한 꽃들 새소리 가득하니 ///천국인가 잠이깨니 무릉도원 이곳일세/// 안평대군의 별장 무계정사지에 무계동 글씨가 옛흔적을 남겨 놓았네요..오래된 고목나무와 옛 기와집에서 옛님의 숨결이 느껴 오네요..싸해지는 이곳이네요.. 현진건 옛집터랍니다...아주 먼 옛날 이집에. 원래는 안평대군 별장이었는데…척살당하고만 안평대군 비운의 현장이지요… 근대 문학 초기 단편소설의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소설가인 그의 작품은 자전적 소설과 민족적 현실 및 하층민에 대한 소설 역사소설이 주류를 다만 친일문학에 가담하지 않은 채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장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답니다..빈처 개벽등 학창시절에 배운 그의 소설 생각 나네요.. 인왕의 무릉도원이며 실제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대단합니다..석파정.. 규모는 작지만 조선조 별장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석파정 인왕산 자락 절개지 위에 서 있는데 사유재산이어서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도로에서 올려다보면 사랑채와 안채 우뚝 솟은 별채가 돌담 안으로 조금 아주 조금 보이네요..이곳 이 사진 한장 촬영하려고 고생좀 했네요..도무지 안이 잘 보이지 않는데요.. 개인 사유 재산이래요.. 남의집에 들어가 볼수 없고 담장은 높고 많이 아쉬웠죠..북한산과 북악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무릉도원 ..석파(石坡)란 정자 앞 산이 모두 바위여서 대원군이 붙인 말 이로 인해 자신의 아호도 석파가 됐답니다..

안평대군이 꿈에 박팽년 등과 함께 노닐던 도원을 당대 최고 화가 안견에게 그리게 한 작품이 유명한 몽유도원도인데 안평대군이 그림에 나타난 장소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가 여기가 바로 무계정사 꿈 속에 본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정자를 짓고 글을 읊은 것이 무계정사 별장의 유래가 되었구요..

이곳 석파정 별장은 안동김씨 김흥근 철종임금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 김흥근의 소유였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대원군이 몰수하여 자신이 별장으로 사용했던 그 석파정이 아무튼 최고의 명당임에 틀림없네요..지금은 없어지고 동도 중고등학교 자리인 공덕리에 있었던~~ 아소정 99 칸 별장도 대원군것이었으니~~과한 욕심인듯합니다.. 부침바위터..건물벽에 이렇게 흔적만을 남기고 있었습니다..설명이 자세하진않지만 간략하게 소개된것처럼 많은 여인네들이 자기 나이만큼 부침바위에 돌을 비벼서 손을 떼면 돌이 붙으면 아들을 낳는다하여 유명했던곳이고 지금의 부암동이란 명칭도 바로 이곳 부침바위를 부암으로 이름이 정해졌다네요..그 부침바위 어디로 옮겨갔는지 부수어 버렸는지 비밀 알수 있을까요 ?? 아름다운 무릉도원 옛님들의 꽃놀이 명소 이곳 인왕산 아래랍니다.. 인왕산 자락 석파랑 주변의 지난 어느 봄날 풍경 인왕산 자락 석파랑 주변의 지난 어느 봄날 풍경 인왕산 자락 석파랑 주변의 지난 어느 봄날 풍경 인왕산 자락 석파랑 주변의 지난 어느 봄날 풍경 인왕산 자락 석파랑 주변의 지나간 어느 봄날 풍경이 그만이었습니다.. 아득한 그옛날 복사꽃 아름답게 피어있었던 산길 복사꽃밭은 어디에도 지금은 없어 무척 아쉽기만 하였구요.. 청계천 시원한 물줄기 옛님들께서 물놀이 빨래터 빨래하던 청계천 바로 이곳에서 마무리하렵니다.. 옛님의 숨결 조금이나마 느낌이 오셨는지요 ? 청계천에는 이처럼 아주 보기 좋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빠르게 정착해 가려는듯 했었답니다.. 봄날에 꽃들이 만발한 몽유도원도의 아름다운 무릉도원 벽련봉 자락 잊을수없겠구요..꿈속 꿈길에서도 이길 걸었으면합니다.. 2012 년도 화사한 봄날 4 월~~우리 님들 아름다운 날들 되세요..^*^ 인왕산 정상인 낙월봉 그리고 기차바위로 지금 불리고 있는 벽련봉 아래 무계정사와 석파정 주변 ~~~~아아~~꿈길 산길~~복사꽃밭~~ 무릉도원 그리워라....안평대군의 드높은 이상향의 세계 무릉도원 ~~몽유도원도 그 풍경 보고파라~~ 아아~~~꿈길 산길 복사꽃밭~~무릉도원 그리워라~~~^*^

곡명 // Dreamy Love Song // Gheorghe Zamfir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들녘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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