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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 황남대총 남분 출토 가슴걸이. 신라 5세기, 상하 길이 63.0cm. 국립경주박물관
1971년 경주역사관광지구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시작된 거대한 쌍분인 98호분의 발굴은 1974년에 5만 8천 점의 유물을 수습하고 끝났다. 하도 그 성과가 커서 고분에 황남대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황남대총의 출토 유물들은 무려 37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과 경주에서 그 전모를 드러냈다. 똑같은 "황남대총 유물전"이지만 2010년 가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와 2011년 봄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서울전은 1천여 점을 정선하여 공예적 아름다움을 앞세운 미술사적 전시였다면 경주전은 출토품의 거의 전량이라 할 5만여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고고학적 전시였다.
미술사를 전공하는 내게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시가 훨씬 감동적이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돌무지덧널무덤이라는 무덤의 내부 구조를 지상에 재현하듯 전시하여 유물들의 출토 상황을 명확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관은 고급스러운 받침대 위에 전시되었지만 경주전에서는 시신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모습대로 뉘여놓고 귀걸이, 허리띠, 반지, 목걸이, 350mm의 금동신발도 시신의 제 위치에 놓아 장엄했던 신라 마립간의 장례 의식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금잔, 은잔, 마구, 철제 무기들을 있는 양껏 모두 전시하고 도기는 깨지지 않은 1500점은 물론 깨진 도편들도 총출동시켰다. 목걸이, 가슴걸이의 흐트러진 구슬 2만 점을 쏟아붓듯 펼쳐놓았다. 이를 위해 경주박물관은 유물창고의 진열장까지 옮겨놓았다. 대표 유물만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감동이 일어났다. 어떤 설치미술보다도 강렬한 집체미였다.
나는 이 전시회를 보고 신라 고분미술의 장대함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전시장을 떠나면서 박물관 학예원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말했더니 그들은 다시 수장고에 넣어둘 일이 끔찍하다고 그 힘겨움을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우리는 이 엄청난 문화유산 콘텐츠를 37년간이나수장고에 넣어두고 살아온 셈이었다. 지금이라도 안압지 유물전시관처럼 황남대총 유물전시관을 별관으로 지어 상설 전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래야 신라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고 국립경주박물관도 새 날개를 달아 더욱 멋지게 살아날 것이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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