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신라의 금관|

창포49 2012. 3. 6. 19:32

 

            (신라의 금관)

 

▲ 황남대총 북분 촐토 금관, 신라 5세기, 높이 27.3cm,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금관은 현재까지 모두 6점이 출토되었다.

그중 5점은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천마총(155호분), 쌍분인 황남대총(98호분)의 북분(北墳)에서 발굴되었고

1점은 경주 교동에서 도굴된 것이다.

 

교동에서 도굴된 금관은 최 모라는 사람이 1960년대에 3년간 땅굴을 파 도굴한 것으로 매매 과정에서 압수된 것이다.

신라 금관은 둥근 테에 나뭇가지를 추상화시킨 출(出)자 모양의 세움장식과 지그재그로 뻗은 사슴뿔

모양을 한 쌍씩 덧붙인 것이 기본형이며 여기에 수십 개의 순금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과

파란 굽은옥의 달개장식이 달려있다.

 

그리고 관테 양옆에는 귀걸이 모양의 드림이 두서너 가닥씩 곁들여 있다.

그래서 세계 역사상 나타난 어느 왕관보다도 화려하고 장엄한 구성미를 보여준다.

 

신라 금관이 곧 왕관은 아니다.

이 6점의 금관은 4세기 중엽부터 5세기 후반의 이른바 마립간시대 유물로 이 시기 마립간은

나물, 실성, 눌지, 자비, 소지 등 김씨 5명에 불과한데,

서봉총은 여자의 무덤이고, 금관총은 15살 전후의 아이 무덤이다.

 

더욱이 부부합장의 황남대총을 보면 남자무덤(남분)에서는 금동관이,

여자무덤(북분)에서는 오히려 금관이 출토되었다.

그래서 신라 금관은 시조(始祖)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제관이 쓰던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금관은 피장자가 생전에 머리에 쓰던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본래 신라의 관모(冠帽)는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삼각형 고깔모자에 금, 은, 동의 새 날개 또는 쇠뿔 모양 장식을 달았다.

 

금관이 고분에서 출토되는 상황을 보면, 지금 박물관에 있는 것처럼 세움장식들이 활짝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 꼭짓점에서 세모뿔 모양으로 뭉쳐 있었다.

게다가 금관의 테두리는 머리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골의 턱 아래쪽까지 내려와 얼굴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신라 금관은 부장용으로 만든 위세품(威勢品)이었다.

 

그러다 왕권이 강화되어 더 이상 거대한 무덤과 금관으로 위세를 부릴 필요가 없어지고 불교가 공인되는

6세기 초 법흥왕 이후로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유홍준의 국보순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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