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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의 추사 현판)
▲ 김정희. 불광 현판. 조선 1850년 추정, 162.0 x 158.0cm. 은해사
팔공산의 명찰인 영천 은해사(銀海寺)는 조계종 25교구 본사 가운데 하나로 거느린 산내 암자만도 6개나 된다.
이 암자들은 웬만한 절집보다 규모가 크고 선방으로서 명성도 높으며 연륜이 깊어 백흥암(百興庵)의 수미단(須彌壇), 운부암(雲浮庵)의 청동관음보살상, 거조암(倨祖庵)의 영산전(靈山殿)과 오백나한상 등은 오래전부터 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은해사 절 자체에는 이렇다 할 불교문화재가 남아 있지 않다. 1847년 대화재로 극락전을 제외한 1천여 칸이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당시 주지였던 혼허(混虛) 스님이 3년여 동안 불사(佛事)를 일으켜 오늘날까지 그 사격(寺格)을 유지하고 있다. 이때 은해사에는 뜻밖의 문화재가 생겼으니 그것은 추사 김정희의 현판 글씨이다. 혼허 스님은 새 법당에 걸 현판 글씨를 모두 평소 가깝게 지내던 추사에게 부탁했다.
문루의 "은해사" 현판은 물론이고, 불전의 "대웅전(大雄殿)",종루의 "보화루(寶華樓)", 조실 스님의 거처인 "시흘방장(十笏方丈)", 다실인 "일로향각(一爐香閣)", 백흥암에 있는 여섯 폭 주련(珠聯) 그리고 추사 글시 중 최대작이라 할 "불광(佛光)" 등 모두가 추사의 작품이다. 특히 은해사의 현판은 추사체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기준작이 된다.
당시 추사는 9년간 제주도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용산 한강변 마루도 없는 집에서 간고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칭송해 마지않는 추사체는 바로 이때 완성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은해사 추사 현판 중 특히 "불광"은 글씨의 구성에 능숙한 변형을 가한 추사체의 전형이다. 박규수의 평대로 "기(氣)"가 오는 듯, 신(神)이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드는 듯, 한 감동이 일어난다. 눈 있는 사람들은 이것을 반가워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제자인 이학래는 영천군수가 되자 은해사를 찾아와 한차례 이 현판들을 보고 놀라웠다고 했다.
최완수 선생은 "무르익을 대로 익어 필획의 변화와 공간 배분이 그렇게 절묘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은해사는 가히 추사 글씨의 야외전시장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휴홍준의 국보순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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