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남/조병화
1
푸른 바람이고 싶었다
푸른 강이고 싶었다
푸른 초원이고 싶었다
푸른 산맥이고 싶었다
푸른 구름
푸른 하늘
푸른 네 대륙이고 싶었다
남남의 자리
좁히며
가까이
네 살 닿는 곳
따사로이
네 입김이고 싶었다
네 이야기이고 싶었다
네 소망이고 싶었다
네가 깃들이는
마지막
고요한 디도의 둥우리이고 싶었다
흙바람 개인 날 없는
어지러운 너와 나의 세월
마른 내 목소리
푸른 네 가슴이고 싶었다
푸른 네 목숨이고 싶었다
너와 날 묻을
푸른 대륙이고 싶었다.
14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기도와 같은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나의 산장(山莊)을 닮은 공적한
먼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때론 신도 찾아드는 깊은 밤에
혼자서 타고 있는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순수를 태워서 투명한 눈물이 되는
무구한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시인의 혼을 태워선 말의 비를 내리는
고열한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산림을 빼앗긴 맹수와 같은 나의 혼에게
먼 옛집처럼 멀리 비치는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어두운 이 지구 인간 세계에서
스스롤 태워서 스스로 꺼지는
종교와 같은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중세(中世)의 기도처럼 검은 상옷을 두르고
밤이 새도록 찬 겨울밤을 눈을 뜨고
혼자서 타고 있는
가는 그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아, 그와도 같이 변하는 세상에서
영원을 울고 있는
갈망과 같은 그 애련한 불꽃을 본 일이 있겠지
그게 너
그 불꽃을 탄다.
27
네게 필요한 존재였으면 했다
그 기쁨이었으면 했다
사람이기 때문에 지닌 슬픔이라든지, 고통이라든지,
번뇌라든지, 일상의 그 아픔을
맑게 닦아낼 수 있는 데 그 음악이었으면 했다
산지기가 산을 지키듯이
적적한 널 지키는 적적한 그 산지기였으면 했다
가지에서 가지로
새에서 새에로
꽃에서 꽃에로
샘에서 샘에로
숲에서 숲에로
골짜기에서 골짜기에로
네 가슴의 오솔길에서 익숙턴
충실한 네 산지기였으면 했다
그리고 네 마음이 미치지 않은 곳에
둥우릴 만들어
내 눈물을 키웠으면 했다
그리고 네 깊은 숲에
보이지 않는 상록의 나무였으면 했다
네게 필요한, 그 마지막이었으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