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물
- 이욱(李煜),幾多愁(虞美人)
春花秋月何時了
춘화추월하시료
往事知多少
왕사지다소
小樓昨夜又東風
소루작야우동풍
故國不堪回首明月中
고국불감회수명월중
雕欄玉切應猶在
조난옥체응규재
只是朱顔改
지시주안개
問君能有幾多愁
문군능유기다수
恰似一江春水向東流
흡사일강춘수향동류
봄 꽃 가을달은
언제나 다하려나
지나가 버린 일들
얼마인지 모른다네
작은 누각에는
간밤에 또 봄바람 불었건만
밝은 달 아래
고국으로 고개돌려 바라볼 수 없어
아로새긴 난간 옥섬돌은
그대로 있으련만
다만 홍안의
아름다움이 변했다네
그대 슬픔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마치 동쪽으로 흐르는
봄 강물 같아라
*
만해(卍海) 한용운은 시에서
봄물과 사랑을 이렇게 견주었다.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산(秋山)보다 높으니라.
그래서,
사랑을 묻느니 잇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라고 읊었다.
김용택 시인도
`봄날`이란 시에서..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 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고 했다.
봄물은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자면
날씨가 따뜻해진 봄에
얼음과 눈이 녹아 흐르는 찬 물이다.
정서적으로 보는 봄물은
이보다 울림이 사뭇 크다.
얼었던 대지를 적시고
만물이 기운을 더하도록 만드는
생명의 신호와도
같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봄물은
문인들이 즐겨 읊던 소재였다.
남당(南唐)의
마지막 군주인 이욱(李煜)은
975년 나라를 빼앗기고
송(宋)에 항복한 뒤 포로가 됐다.
고국이 있는
난징(南京) 지역을 그리며 읊은
'우미인(虞美人)'이라는 사(詞)는
탁월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달 뜨는 밤,
봄바람 찾아오는 유폐지에서
눈물을 훔치던 그는
마지막에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問君能有幾多愁
문군능유기다수
恰似一江春水向東流
흡사일강춘수향동류
그대 슬픔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온 강의 봄물이
동쪽으로 흘러가는 듯하네/
슬픔이 봄물처럼 흘러간다.
그런데 그 슬픔은
강 전체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하나라는 뜻의 '일(一)'이라는 글자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는 전체를 뜻한다.
슬픔의 경계가 무한으로 커진다.
모든 것을 부풀리는
봄물의 상징성(象徵性)과
강물 가득하다는 크기의 형용이 섞여
큰 공명(共鳴)을 주는 대목이다.
대만의 국민 가수로 불리는
덩리쥔(鄧麗君)은 이를 노래로 불렀고,
빼어난 가창력 덕분에
중국어권에서는 모르는 이 없을 정도의
가요가 됐다.
봄물은 이렇게
감정의 의탁(依托)이 쉬운 대상이다.
때로는 생명의
환희(歡喜)를 주기도 하고,
애절한 사랑의 깊이를
견줄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할 수 있다.
이제 3월이다.
봄 봄 봄 ..
지금 창 밖에는
봄비가 내리고 있다.
*
이욱(李煜 937~978):
중국의 오대(五代) 남당(南唐)의 마지막 왕.
이후주(李後主)라고도 한다.
자 중광(重光). 호 종은(鍾隱).
송(宋)나라에 패하여
유폐되었다가 독살되었다.
음률에 정통하였으며
사(詞)를 서정시로 완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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