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북방에서 - 백 석

창포49 2010. 10. 3. 03:33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백석

 




 

 



북방에서 - 백 석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를 숙신(肅愼)을 발해(勃海)를 여진(女眞)을 요(遼)를 금(金)을
흥안령(興安嶺)을 음산(陰山)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 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야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 ― 나의 태반(胎盤)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Tamara - Abrazame 

사진은 1937년 함흥 영생고보 교사 시절의 백석. 백석은 1930년대 문단의 최고 미남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1912년 평북 정주 출생으로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다.같은 정주출신 시인인 김소월과는 오산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모더니즘 계열의 서정시집‘사슴’을 출간하면서, 문단의 혜성으로 떠올랐다. 한정판 100부 출간했는데,출판과 동시 매진되었고 당시 문학 지망생들에게 이 시집을 필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윤동주도 이 필사본 시집을 간직하며 습작공부를 하였고,신경림 시인도 학창시절, 당시는, 읽거나 소지하는 것조차 보안법위반이던 불온서적이던
이 시집 필사본을 구해 공부했다고 한다.
함흥 고보에서 영어교사를 하였으며, 이 시절의 여인으로 <자야>란 여성이 등장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같은..시의 배경이 된다.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잡지 녀성,조광等의 편집을 맡았다. 이 무렵의 여인이 <통영의 란>이 있다.., 이 무렵의 시가 <바다>란 시가 있다 방랑으로 일관하며 시를 썻으며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여우난 골졳><고야><山비등등..>
주옥같은 시편을 남겼다. 일제의 창씨개명 강요와 강제 징용을 피해 만주로 갔다가 해방을 맞았다. 광복과 함께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으나 김일성 찬양과 체제 선전에 시가 동원되는 것에 반대, 순수서정적인 시를 고집하다 문단에서 소외됐다. 해방후 북한에서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 동화시와 수필등이 2001년 국내에 소개되었다 62년 북한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 돼 창작활동 중단했다. 분단상황 탓에 이전엔 거의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1988년 월북문인 해금조치 이후 그이 빼어난 시편들이 이동순 시인(영남대)등에 의해서 새롭게 조명되면서 한국 현대 시사(詩史)의 걸작으로 자리잡았고, 그에 관한 학위-연구논문만 300여편 쏟아져 나왔다. 문학사상사가 6권까지 발간한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등에서 등과 같이
<우리나라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시사랑사람들 문학, 이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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