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교향곡 제7번 A 장조 작품 92 (Beethoven /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창포492016. 4. 22. 01:13
Beethoven, Ludwig van (1770-1827 G.) 의 교향곡 제7번 A 장조 작품 92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를 감상하겠습니다.
악성 베토벤은 고전 음악의 최대의 완성자인 동시에 그 완전한 형식적인 예술에 보다 인간적이고 정신적인 내용을 담은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영웅적인 백절불굴의 투지로서 모든 난관을 극복한 승리자였으며 철학자이며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애를 실천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음악은 고전의 형식미에서 벗어나 낭만주의 음악에 문을 연 교량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음악가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를 제2의 모짜르트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는 모짜르트처럼 신동은 아니였으나 음악적인 천분을 마침내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7세 때에 그 당시 음악의 중심지였던 비인으로 갔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이 때부터.시작되었다고 하겠습니다. 1792년 22세 때에 그가 비인에 나타났을 때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먼저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 많은 역경과 고난이 겹쳐 들었습니다. 생활은 곤란했고 사랑은 실패했으며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귓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1814년 이래 그는 완전한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고통 속에서도 비할 바 없는 위대한 예술이 나타났습니다. 1815년 이후의 작품은 그의 모든 창작 중의. 일대 전환인데 웅대한 구상과 자유로운 형식, 진지한 표현 등은 거성이 아니고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영향도 받았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냉정했으며 안정된 형식미를 갖추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체험을 합리적인 형식을 통해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통 3기로 나누는데, 제1기((1786-1803) 초기의 작품으로서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을 받은 때입니다. 교향곡 제1,2번이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제2기(1804-1816)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독창적인 시기입니다. 교향곡 제3번에서 제8번까지의 작품입니다. 제3기(1817-1827) 초인간적인 최고의 예술인데 영감의 창작기입니다. 청각을 거의 잃어버린 이후의 감각을 초월한 시대의 작품을 보였습니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9번 등이 있는데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음악사상 최고에 속합니다. 베에토벤이야말로 많은 유산을 우리 인류에게 남겼다고 하겠습니다.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이 교향곡은 1812년 42세 때의 작품인데 그는 불안한 생계와 귓병, 위병 등으로 몹시 괴로웠을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쉴 사이도 없이 계속 명작을 써냈습니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무도의 신화라 했으며 지금까지 세계의 예술이 창조 하지못했던 명쾌한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군이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여 유럽을 휩쓸던 때였으며 온 유럽의 모순이 집결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향곡은 그 구성과 수법, 내용, 악기의 편성 등에서 볼 때 그의 교향곡 중에서 제1위에 꼽힌다는 것입니다. 리듬의 요소가 강하다는 점 등은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1813년 봄에 루돌프 디공의 집에서 사적인 발표회가 있었고 그 해 2월 8일에 비인 대학 강당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1 Poco sostenuto vivace 2 Allegretto 3 Presto 4 Allegro con brio
리하르트 에드링거(Richard Edlinger, 지휘)
1958년, Austria의 브레겐츠(Bregenz)에서 태어나 17살 때 처음 지휘를 했습니다. 빈 아카데미에서 지휘와 작곡을 전공했고 1982년에 졸업했습니다. 이무렵 이미 리하르트의 지휘 능력은 상당했고, 1983년에 밀라노에서 열린 '귀도 칸텔리 지휘 콩쿠르'에 참가해서 사상 최연소의 나이에 결선까지 진출하고 우승했습니다.
지휘자로 데뷔한 이후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수많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1987년엔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가수인 Heinz Holecek와 함께 도나우강 지역에 '캄프탈( Kamptal) 페스티발'을 창설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빈 캄머오퍼, '쉔부른의 모차르트' 여름 페스티발'에서 지휘하고 있고, 스투트가르트, 자르부뤼켄, 루체른, 리스본의 싼 카를로 국립극장 등에서 지휘하고 있습니다.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박쥐'를 들고 일본을 순회했고, 카이로와 빈에서 매년 열리는 야외연주회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1995년부터는 '빈 음악 세미나'에서 마스터 클라스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음반은 주로 Naxos 레이블로 발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약 80여종의 다양한 음반을 발표하고 있을만큼 왕성한 의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현상은 에드링거의 음반들이 주로 가벼운 소품들과 영화음악에 치중되어 있는 사실이고, 대곡에서는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작품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지휘자의 음악적인 색깔이 짐작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