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비오는 날은 / 다리가 흐르고

창포49 2017. 9. 12. 21:59

              



이렇게 비오는 날은 - 오 광수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엔
창가에 기대어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좋다
 
유리창을 쓰다듬는 빗줄기가
지난날 그 사람 손길이 되어
들고 있는 잔을 꼭 쥐게 하면서
 
한 모금 천천히 입안에 모으면
온몸에 퍼지는 따스함으로 인해
저절로 나오는 가벼운 허밍
 
보고픈 이의 향기였을까?
지나간 이의 속삭임이었을까?
커피향은 가슴으로 파고드는데
 
목안으로 삼킬 때의 긴장은
첫마디를 꺼내기가 어려웠던
첫사랑의 고백이 되어
 
지그시 감은 눈앞으로
희미한 얼굴이
빗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이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나만의 지난날과 함께할 수 있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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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빈 손에 호미자루를 잡고
걷다가 때론 물소를 탄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다리가 흘러가고 도리어 물은 흐르지 않네

- 傅大士 (467~569)


2

한 잎 조각배는(偶書)

 

飄然一葉泛風濤  萬抗千搖浪轉高
本自舟中無一物  陽候惱殺也從勞
 

한 잎 조각배는 바다 위를 떠가는데

천만 번 흔들리면서 파도는 더욱 높네
본시 이 배 안에는 아무것도 없거니
뭣 때문에 물결은 저리 사납게 일고 있는가.

- 원감충지 (圓鑑沖止, 1226∼1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