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봄 - 오세영
봄 - 오세영
봄은
성숙해가는 소녀의 눈빛
속으로 온다
흩날리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봄은
피곤에 지친 춘향이
낮잠을 든 사이에 온다
눈뜬 저 우수의 이미와
그 아래 부서지는 푸른 해안선
봄은
봄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의
가장 낮은 목소리로 온다
그 황홀한 붕괴, 설레는 침몰
황혼의 깊은 뜨락에 지는 낙화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이제는 봄이구나 /이해인
강에서는
조용히 얼음이 풀리고
나무는
조금씩 새순을 틔우고
새들은
밝은 웃음으로
나를 불러내고
이제는 봄이구나
친구야
바람이 정답게
꽃이름을 부르듯이
해마다 봄이면
제일 먼저 불러보는
너의 고운 이름
너를 만날
연둣빛 들판을 꿈꾸며
햇살 한 줌 떠서
그리움, 설레임, 기다림…
향기로운 기쁨의 말을 적는데
꽃샘바람 달려와서
네게 부칠 편지를
먼저 읽고 가는구나, 친구야
봄/ 안도현
제비떼가 날아오면 봄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봄은 남쪽나라에서 온다고
철없이 노래 부르는 사람은
때가 되는 봄은 저절로 온다고
창가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 들판에 나오너라
여기 사는 흙 묻은 손들을 보아라
영차 어기영차
끝끝내 놓치지 않고 움켜쥔
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
봄을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