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독일, 1875~1926)|

창포49 2015. 9. 24. 22:38

 









가을날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을 무럭 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강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을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 남아서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예술가에겐

깊은 외로움이 없어선 안 된다."라고

가을에 생각나는 시인 릴케,


가을날 느끼는 서정으로 신의 섭리와

인간의 한계에 대한 깨달음을 가슴 속 깊이

자리매김케 하는 위대한 시, 가을날.

 

인간 근원적 고독에 대한 성찰을

가을의 풍성함과 쓸쓸함의 극단적 대비로

경건한 어조와 기도로 절대자에게

자비를 기원하는 이 시를 나는 정말 좋아한다

 

내 젊은 시절의 편린인 릴케의 시를 상기하면

엷은 미소가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학창시절

릴케의 "잠 못 이루는 이 밤을 위하여"란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한껏 무게 잡고

친구 만나러 가는 주말 버스 안에서 옆에 앉은

승객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기억이 있다

표지에 릴케의 모습이 한 면을 가득 채웠지만,

시집 제목이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을

받은 듯하다

 

음정 회원 여러분,

이 가을에 가을날이란 릴케의 시와

어디에서든 절정으로 치달을 가을의

완숙함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