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 李仁星 (1912.8.28 ~ 19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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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일 : Warm Day>
1930년대 중반, 종이에 수채, 72x90cm mid - 1930'0, Watercolor on Paper
글 : 최인호 <누가 천재를 쏘았는가>, 한국일보 1974. 6. 5.
해방 직후 좌익이다 우익이다, 싸움이 벌어져 드디어 정판사건이 터진 서울의 밤 일곱 시께. 일찌감치 통행 금지가 내려진 골목길을 술 취한 취객 하나가 걷고 있었다. 주위의 정적쯤은 아랑곳없이 기분 좋게 취한 그 사내는 비틀거리면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풍경 : Landscape>
1930년대 중반, 나무판에 유채, 24x33cm mid - 1930'0, oil on wooden board
"누구냐. 정지!" 돌연 거리를 차단하고 있던 치안 대원이 지나가던 사내의 발걸음을 막아 세운다. 사내는 놀란 듯 우뚝 선다.
"누구냐!" "지나가던 취객이요." "뭐라구! 지금이 무슨 시간인데 장난하려 들어. 누구야!" "취객이요. 술 취한 취객이요." 사내는 껄껄 웃어제낀다. "웃지마라. 누구야!" "나 말이요?"
손전지 불 밑에 드러난 사내의 얼굴은 생각보다는 곱게 생겼다. 악의 없는 참하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이 한눈에 드러난다. 치안 대원은 울컥 화가 치밀어오른다.
"뭐라 따지지 말라." "정지! 정지! 누구야!" "나 말요. 나. 천하의 나를 모르오?" "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나를 모르오. 난 이인성(李仁星)이오. 천하의 천재 이인성이오." "뭐라구?"
치안대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사내의 기세가 너무나 등등하여 혹시 고위층의 인물인가 행여 겁도 나서 일단은 치밀던 화를 자제하고 집으로 보내 준다.
그러나 그 치안대원은 좀체로 치밀던 화가 풀리지 아니한다. 그래서 경비소로 돌아온다.

<백장미 : White Reses> 1940, 나무판에 유채, 45.3x37.3cm 1940, Oil on wooden board
"누구 저기 위에 사는 이인성이라는 사람 알어?" "알지." 앉아서 사무 근무를 하던 사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그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 "뭐하긴 뭐해. 환쟁이지." "환쟁이? 아니 그 자식이 환쟁이야?"
사내는 뛰쳐나간다. 그리하여 씩씩거리며 좀전의 사내가 들어간 집 대문을 발길로 걷어찬다.
"누, 누구요?" 술 취해 자리에 누워 있던 이인성은 옷도 채 입기 전에 문을 열고 나서려는 순간 사내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욕설이 튀어나온다.
"더러운 쌕끼." 가슴에 품었던 치안대원의 총이 잠결에 튀쳐나온 이인성의 이마를 향한다. 방아쇠를 잡아당긴다.
"타앙!"
한 발의 총성이 정막을 찢는다. 이인성은 쓰러진다.
이상은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이 죽는 순간을 나 나름대로 소설체로 표현해 본 것이다.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해방된 조국에서 기쁨에 술 취해 돌아오던 이인성은 같은 동포의 총에 맞아 죽었다.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그 손끝이, 그 손끝에서 나온 그림이 일본인의 눈을 놀라게 했던 이인성의 마술적 재능이 총 한 방에 죽고 말았다. 자신을 서슴지 않고 천재라고 표현하던 이인성이 통행 금지에 걸려 죽었다.
환쟁이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이십년이 흘러간 지금 그의 그림은 남아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천재의 재능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어촌(덕적도 풍경 : Fishing Village)> 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32x41cm, 개인소장 later 1940's, Oil on canvas
여러 가지로 따지지 말라.
예술가가 무슨 특권이 있다고 통행 금지 이후에 다닐 수 있담 하고 따지지 말라. 자기가 뭐라고,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통행금지 이후 다닌담 하고 따지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천재 화가를 죽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메고 가는 예수를 찬미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를 향해 돌을 던졌던 바리새인을 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또한 그 시대에 살아 있었다면 그 시대의 이단자인 예수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졌을는지 모른다.
이조 백자는 지금에 와서는 위대한 예술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에 그들을 백정 취급하였다. 그들을 따로 살게 했고, 그들끼리 혼인케 하였으며, 열병 걸린 전염병 환자 취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빚었다. 그들의 恨을 도자기로 빚었다.
수백년 지나서 그 이조 자기는 그들을 멸시하였던 우리들의 유일한 자랑스런 유산으로 남아 있다. 우리 문학의 고전도 마찬가지다. 춘향전도, 흥부전도, 심청전도 멸시 받았던 하위 계급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구화문학이다. 말하자면 하위문화들의 소산이다. 그것을 우리는 배운다. 배우고 있다.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다.

<해당화 : Sweet Brier Flowers> 1944, 캔버스에 유채, 228.5x146cm, 호암미술관 소장 1944, Oil on canvas, Collection of Ho-Am Art Museum, Yongin
天才는 神이 낳아 왜 그들을 죽은 다음에 추모하는가. 왜 이인성이 죽은 지금에 그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우는가. 왜 그들을 우리 곁에 살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가. 살아서 명동에서, 무교동에서 술 취한 이인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 왜 살아 있는 천재 이인성이 우리 곁에서 시대의 예언을 내려주는 그 신의 계시를 듣지 못하게 하는가.
환쟁이 이인성은 그렇게 죽었다. 하지만 이십년이 흘러간 지금 그의 그림은 남아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천재의 재능을 엿보이게 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따지지 말라. 예술가가 무슨 특권이 있다고 통행금지 이후에 다닐 수 있담 하고 따지지 말라. 자기가 뭐라고,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통행금지 이후 다닌담 하고 따지지 말라.
그렇게 말하는 너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위대한 천재화가를 죽인 사람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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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성(李仁星, 1912.8.28 ~ 1950.11.4)
서양화가
주요수상 :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1935)
주요작품 : 《경주의 산곡에서》 《실내》
대구(大邱) 출생. 보통학교를 나온 뒤 서동진(徐東辰)에게 사사,
수채화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고, 1930년 도쿄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일본 제전(帝展)에 출품, 수차 입선하였다.
1935년 제14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제전에서는 준특선, 1937년 추천작가가 되었다.
1938년 개인전, 1940년 김인승(金仁承)·심형구(沈亨求)와 함께 3인전을 가졌으며,
개인 아틀리에를 열어 후배를 양성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8·15광복 후는 이화여고 교사를 지냈고,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작품 경향은 인상파적인 감각주의에서 그의 이국 취향과 토속적 소재를 발전시켰다.
작품으로 《경주(慶州)의 산곡에서》 《실내》 등이 있다.
3. 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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