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모 란 봉
대동강의 경치가 좋아
시흥이 도도했던 것도 잠시,
나룻배에서 내린 그를 반겨줄 곳이 만무하여
구차한 하룻밤을 보낸 김삿갓이 다음날 牡丹峰에 올랐다.
평양북쪽에 있는 높이 96m, 평양의 鎭山인
錦繡山과 그 줄기에 있는 乙密臺와도 연결되는 경승지여서
꿈에 그리던 평양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을 곳이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눈 아래 비단 폭처럼 넘실거리는 것이 대동강,
그 위에 절벽을 이루며 우뚝 솟은 산이 금수산,
강 건너 수양버들이 실실이 우거진 섬은 綾羅島,
그 옆으로 半月島, 羊角島 등등의 작은 섬들이 점점이 河中島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를 자고로 금수강산이라 불러오고 있는 것도
이 평양의 금수산에서 나온 말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
김삿갓은 대동강을 내려다보며 이곳을 먼저 지났던
옛 선비들의 시들을 치레로 머리에 떠 올려 본다.
대동강 아가씨들 봄놀이 즐기려니
수양버들 실실이 늘어져 마음 애달고
가느다란 버들 실로 비단을 짠다면
고운님을 위해 춤옷을 지으리라.
浿江兒女踏春陽
江上垂楊正斷腸
無限烟絲若可織
爲君裁作舞衣裳
↑ 이는 풍류시인 白湖 林悌의 浿江歌요,
금수라는 비단 산이 이미 있는데
능라라는 비단 섬을 또 보노라
조선 사람들은 그 이상 사치를 경계하려고
일부러 하얀 옷을 입는가 보다.
旣有錦繡山
更見綾羅島
東人戒驕誇
衣裳多素縞
↑ 이는 당나라 사신 史道의 노래이다,
날이 저물어오자 강 위에 떠 있는
놀잇배에서는 등불들이 하나 둘 꽃처럼 피어오른다.
그것은 마치 꿈나라의 환상인 것만 같아
김삿갓은 불현듯 白樂天의 시를 연상하였다.
꿈같은 세상에 봄이 찾아오니
허황한 인생이 물거품 같구나.
오만가지 시름을 모두 없애려거든
술 이외에 또 무엇을 구하랴.
幻世春來夢
浮生水上漚
百憂中莫入
一醉外何求
그러나 오늘도 김삿갓에게는 술도 없고 잠자리도 없지 않는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좌우간 인가근처로 내려가 봐야 할 것이었다.
계속...
살풀이(철가야금지성자)